등록 : 2006.05.18 21:50
수정 : 2006.06.0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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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원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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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내게도 이른바 ‘출교의 추억’이란 것이 있다. 유년시절이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출석했던 교회는 이즈음에도 흔한 이른바 사이비 교회였던 것 같다. 설교시간이면 담임목사는 천국을 강조하며 각종 헌금을 독려했다. 다양한 헌금이 있었는데,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약정헌금’이라는 것이다. 지금은 돈이 없더라도, 여유가 생기는 시점에는 약속한 헌금을 봉헌하라는 약속을 신 앞에서 해야 했다. 천국행에도 이른바 ‘급행료’라는 것이 있었나 보다.
자격이 없는 목사의 부인도 자주 기묘한 설교를 하곤 해서 아이들을 질리게 했다. 담임목사가 돈과 결부시켜 천국을 상기시켰다면, 목사의 부인은 질병에 신음하는 신도들의 쇠약한 육체를 ‘마귀’와 결부시키곤 했다. 당신들이 고혈압과 당뇨병, 중풍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마귀’가 몸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마귀를 쫓아내려면 ‘안수기도’를 받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헌금을 봉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겁에 질린 아이들이 그 부모들에게 헌금을 독려하곤 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로 시작되는 성경을 읽고,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로 시작되는 복음성가를 불렀지만, 목사나 그의 부인이나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헌금’이 있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런 설교가 납득되지 않아, 내 동생을 포함한 중고등부의 학생들이 목사와 그의 부인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거기에는 막 우리 교회에 부임했던 젊은 교육전도사의 영향도 있었다. 일반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신학대에 재학 중이었던 이 전도사는 사랑과 구원, 천국과 지옥에 ‘돈’이 결부되는 것은 기독교의 교리와 완전히 무관하며, 특히 몸의 질병을 들어 ‘마귀’ 운운하는 설교는 하나님의 영광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논지의 설교를 우리에게 하곤 했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도 젊은 전도사의 설교는 설득력이 있었다.
교회 당국의 징벌은 신속하고 과감했다. 우리들의 전도사는 곧장 해임되었고, 목사와 그 부인의 배금주의적 설교에 이의를 제기했던 중고등부 학생들은 예배 도중, 갑자기 큰 목소리로 이름이 불려지더니 “오늘부로 너희들을 출교한다!”는 한 대머리 종교재판관의 선고를 들어야 했다. 마음이 여린 여자아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출교의 근거로 ‘마귀’로 지목된 여중생이었다. 나와 내 동생 역시 출교 당했다. 역시 마음에 ‘마귀’가 들어와 신성한 신의 대리자의 설교를 문제 삼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우리는 우는 대신 해당 목사를 ‘상급노회’에 제소했다.
투표권을 요구하며 교수들을 장시간 억류했던 고려대생들에 대해 학교 당국이 출교 처벌을 내렸다고 한다. 내 경우와는 분명 다른 것이지만 학생들에게 내려진 출교 조처는, 그들의 처지에서는 ‘영구제명’인 것이어서 대단히 충격적인 사태다. 나는 학생들의 행동이 ‘과’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대학 당국이 오히려 그런 행동의 과격성을 배태한 상황의 심각성을 관대하게 포용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이기적’인 동기로 그런 ‘과’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전체 학생들의 ‘평등권’을 역설했지만,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우발적으로 ‘과’한 행동이 나온 것이다.
나는 교육의 참된 가치 중의 하나는 ‘관용’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가 우발적으로 초래하는 ‘과’한 실수까지도 교육은 인내를 갖고 포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려대의 대학 이념 가운데 ‘자유’라는 표현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다.
이명원 서울디지털대 문예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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