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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8.14 20:13 수정 : 2006.08.14 20:13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야!한국사회

오늘은 광복을 맞이한 지 61돌 되는 날이다. 반가운 소식은 지난해 말 국회에서 통과된 약칭 ‘친일파 재산환수법’에 따라 일제의 한반도 지배에 협력한 친일파 400여명의 재산을 국고로 환수하기 위한 작업이 이달 18일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반민특위 해산 이후 자손들에게 고스란히 대물림된 친일파 재산에 대한 국가 차원의 환수 작업이 57년 만에 재개되는 셈이다. 제헌국회 당시 친일파의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고 재산을 몰수하고자 설치된 ‘반민특위’는 221건을 기소했지만 신체형을 받은 친일행위자는 10여명에 그쳤고, 이들 역시 대부분 곧바로 석방되고 말았으며, 반민특위는 제 소임도 하기 전에 이승만이 1949년 강제로 해체하고 만다.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지난 세월 동안 친일파는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얻은 부와 권력을 바탕으로 교육에 힘써 그 후손들은 박사·교수·의사·실업가 또는 고위 공직자와 국회의원이 되었고, 오늘날까지 우리나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나 독립운동을 하던 선열들은 자손을 남기지도 못하고 이국땅에서 쓸쓸히 죽었거나, 아니면 자손들이 남았더라도 재산도 없고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해 대다수가 해방된 조국의 빈민으로 살아 왔다.

친일파 청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두고 어떤 작가는 ‘쉰 목소리’라고 비아냥대고, 어떤 사회 인사들은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자고 말하고, 어떤 정치가들은 특정인 흠집내기라고 음모론으로 몰아간다. 또 어떤 문학평론가는 “사실상 40년이 넘는 일제의 한국 지배 기간을 완전히 티없이 지낸 ‘기적의 잔류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일제 청산을 부정적으로 몰고 간다. 그러나 친일파 청산이 ‘완전히 티없는’ 사람만 빼고 다 처벌하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본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소수라도 응당 받아야 할 역사적 심판을 받게 하자는 뜻일 뿐이다.

2년 반 전에 81살로 돌아가신 아버님은 일제 말기에 징병으로 태평양 전쟁에 끌려가셨다. 1965년 박정희가 일본 정부에 다시는 전쟁 배상금을 청구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무상차관을 받았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잃어버린 청춘의 대가를 일본 정부에 요구할 권리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박정희는 혈서를 써서 충성을 맹세하여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으며,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중국에서 만주군 중위로 있었다. 그가 일본군으로 중국에서 무엇을 했던 것일까? 만주에서 일본군이 한 일은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의 항일세력과 우리나라의 광복군을 격멸하는 일이었다. 자신의 출세와 영화를 위해 일본 군인이 되어 항일연합군과 교전을 하던 사람이 강제로 징병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목숨과 청춘을 대신해서 보상금을 가로챌 명분이 과연 있는 것이었을까?

1968년 유엔은 당시 독일의 나치전범 처벌에서 ‘공소시효’ 문제가 제기되자 전쟁범죄와 비인도적 전범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반인도적 범죄 협약’을 채택해 시대적 흐름으로 정착시켰다. 그러나 우리나라만은 유독 역사 바로잡기를 마치 과거에 대한 집착인 양 몰아가고 있다.

이제라도 친일파들의 재산을 환수하기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러나 56년이 지나는 동안 그들 자신은 역사의 심판을 받지 않고 편안히 여생을 보냈다. 따라서 재산 환수는 민족을 팔아넘긴 죄과에 대한 최소한의 조처일 수밖에 없다. 이번 조처는 친일파 후손이 모은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조상이 친일의 대가로 얻은 재산만을 환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위헌시비를 통해 거부한다면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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