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18 18:22
수정 : 2006.09.1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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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혜정 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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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이 사회는 여성들에게 밤길 조심하라고 말한다. 무서운 호랑이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공격할지 모르는 남성들 때문이란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들이 두려워하는 여성들이 있다. 바로 ‘꽃뱀’이다. 혹 자신도 모르게 물려 ‘잘나갈 수 있는 인생’에 독이 퍼질 것을 두려워해서인지 남성들은 ‘꽃뱀 대응법’에 이상하게 관심이 많다. 이른바 성폭력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애를 쓰는 진보 남성 인사들조차도 꽃뱀으로 인해 선량한 남자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가장 경계한다. 이유는 단 하나, 한 명이라도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란다(억울한 여성들은 여전히 많은데도).
요즘엔 꽃뱀처럼 남성들을 불안하게 하는 ‘새로운’ 여성들이 등장했다. 이름은 된장녀다. ‘된장녀의 하루’라는 기사에서 말하는 그녀들의 일상은 명품 소비로 가득 차 있다. 그런 여성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남성 누리꾼들의 의견이 모아지면서 인터넷 포털사이트나 신문들은 경쟁이라도 하듯 된장녀를 분석해대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과소비를 걱정하는 말에서부터 스타벅스 커피를 소비할 수 있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들의 차이에 대한 원인 규명까지 한동안 시끄럽다.
그러나 ‘친절하게 설명되는’ 된장녀 분석과 달리, 필자가 만난 이른바 ‘된장녀’들은 서구에서 수입된 4500원짜리 커피를 마시지만 3000원짜리 티셔츠를 입으며 부지런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었다. 행복을 보장할 것 같지 않은 결혼보다 자신이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미래를 만드는 그녀들은 정작 ‘녀’ 시리즈에 관심이 없다. 자신들을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누구를 왜 말하고 있는가?
현피녀, 된장녀, 귀족녀 등의 수많은 ‘녀’ 시리즈는 ‘보통 여성의 삶으로 기대되지 않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특정 재현이다. 평범한 여성들로 보이지 않는,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관리하며 남성들의 도움을 필요로 할 것 같지 않은 여성들은 (남성들이 보기에) 무엇인가 불안해 보인다. 그녀들은 남성들의 환상 속에 자리잡고 있는 ‘자식을 위해 수절한 어머니’나 ‘정절을 지키기 위해 은장도로 자결한 여성들’과 너무 다르다.
특히 그녀들은 전지구화 시대에 남성들보다 더 발 빠르게 움직인다. 한국 남자, 한국 사회가 중심이 아니라 이미 국가의 경계를 넘어 스타벅스를 통해 새로운 욕망의 목소리를 표현한다. 거기에다 최근 들려오는 ‘국가시험 수석은 맡아 놓고 여자다’, ‘내신 때문에 남녀공학이 선호되지 않는다’, ‘여자아이들이 더 폭력적이다’, ‘여자들이 출산을 거부한다’, ‘다시 황혼 이혼이 많아진다’ 등의 소식들도 남성들을 두렵게 한다.
중세시대에 ‘마녀’가 있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마녀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관념들은 거짓이고 환상이었지만 마녀는 실재했다. 현명한 여성이거나 약초 전문가, 산파, 낙태시술자로 많은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었기에 그 일을 하지 못하는 남성들은 마녀를 두려워했다. 마찬가지로 ‘꽃뱀’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성적인 욕망을 당당하게 드러낸 여성들로 실재한다. 단지 그들을 통제하지 못해 거꾸로 당할까봐 남성들이 두려워할 뿐이다.
결국 남성들은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여성들에 대해 그들의 소비방식을 빗대어 자신들의 두려움을 말하기 시작했다. ‘남성을 중심으로 살지 않는 여성들’을 못 견디는 남성들이 관심을 보여 달라고 애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녀’ 시리즈는 남성들의 분열과 위기를 보여주는 징후일 뿐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그 이름들을 비웃으며’ 즐겁게 자신의 삶을 살고 있다.
변혜정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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