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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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중대한 질병에 걸리게 되면 사람들은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 것인지를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된다. 더구나 병이 심각하여 완치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말까지 듣는다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혹시라도 외국에 나가면 완치가 될 수 있지나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가끔 재벌 회장들이 암에 걸렸을 때 외국의 유명한 병원에 가서 치료했다는 기사를 읽은 것이 떠오른다면 나와 내 가족이 돈 때문에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자신의 처지가 비관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와 선진국 간 의료 수준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질병이나 의료 분야마다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의료 수준을 비교하기 편한 암을 예로 들어 보자. 1995년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41.4%였다. 암에서 5년 생존율을 중시하는 이유는 암을 진단받은 뒤 5년 뒤까지 생존했다는 것을 암에서 완치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학 발전에 있어서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 일본의 5년 생존율은 41.2%였으니 우리는 적어도 암 치료 수준에서 일본과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미국 암환자들의 5년 생존율은 64.1%였다. 이 자료만 본다면 미국은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비해 암 치료 수준이 훨씬 높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본은 식생활을 비롯한 생활습관이 우리와 유사하여 암의 발생 분포가 매우 유사하지만 미국은 우리와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는 남녀 모두 위암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반면, 미국의 경우 남성은 전립선암이 31.5%로 가장 흔하고 여성은 유방암이 31.3%로 가장 많다. 우리가 이 대목에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암이라고 해도 다 같은 암이 아니며 그 성격이 천양지차라는 점이다. 암에도 경과가 아주 나쁜 암도 있고, 좋은 암도 있다. 놀랍게도 미국 남성에서 가장 흔한 전립선암은 5년 생존율이 99.9%다. 즉 전립선암에 걸린 사람 중에서 5년 동안 전립선암 때문에 죽는 사람은 (다른 요인으로 사망하는 사람 빼고) 1000명당 1명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미국 여성에게 가장 흔한 유방암은 5년 생존율이 89.8%다. 즉 유방암에 걸린 사람이 5년 안에 유방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10%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제 미국의 5년 생존율 64.1%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암 생존율이 높은 이유는 단순하게 경과가 좋은 암이 흔하기 때문인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에 비해 우리나라에 흔한 위암과 간암의 생존율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알 수 있다. 위암의 5년 생존율이 우리나라가 43.9%인데, 미국은 23.3%에 그치고 있다. 간암 5년 생존율은 우리나라가 10.5%인데, 미국은 8.3%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우리나라 의사들은 위암과 간암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서 치료 성적도 좋기 때문이다. 같은 의미에서 미국 의사들은 유방암과 대장암에서 우리나라 의사들보다 더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서 더 좋은 치료 성적을 보인다. 이제 결론을 내리자. 우리나라 의료기술은 새로운 수술기구나 새로운 진단방법, 새로운 약제를 개발하기에는 턱없이 미흡하지만, 선진국이 이미 개발한 치료기법을 도입하는 데는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적어도 암 치료 때문에 외국까지 갈 필요는 없을 것이며 위암이나 간암을 치료하러 미국에 간다면 의료 후진국으로 치료받으러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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