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9.28 22:20
수정 : 2006.09.2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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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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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의사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의사에게 중요한 것은 실력이 아닌, 양심이다. 실력 때문에 살 환자가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의사가 양심을 버리면 아무도 말릴 자가 없다.”
매우 일리 있는 말이다. 의사가 돈을 벌 목적으로 하등 필요 없는 검사를 남발해도 환자는 따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지만 가끔은 실력도 중요하다. 살 환자가 죽는 경우가 만 명에 하나쯤 나오는 드문 일이라 할지라도, 그게 자신에게 닥치면 100% 아닌가.
대전에 사는 40대 여자가 목에 뭐가 생겼다고 내 친구가 하는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친구가 보니까 과연 동그랗게 생긴 뭔가가 있다. 생판 처음 보는 거라 고민을 하던 친구, 그냥 확 떼어버리고 보낼까 하다가 찜찜한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큰 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해보시는 게 좋겠네요.” 나중에 그 여자는 친구 병원에 다시 왔다. 대학병원서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해 보니 뇌종양이 발견되어 치료를 했다는 거다. 그러니까 목에 생긴 것은 뇌종양이 전이된 결과였다. “제가 암인 줄 어떻게 아셨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여자는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지만, 친구는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냥 떼어내고 환자를 집에 보냈다면 그 자리는 환자 가족들에게 멱살을 잡히는 자리였을 터이다. 뇌종양이 그렇게 전이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는데, 친구가 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사실 실력이리라. 대전 시내만 해도 많은 이비인후과가 있으니, 그 환자가 내 친구보다 실력이 못한 병원을 찾았다면 그녀의 운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이와는 대조적인 경우. 내 친구의 장모는 6개월 동안 동네 내과에서 결핵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차도가 없고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는 듯해서 큰 병원으로 옮겼는데, 진단은 폐암 말기였다. 친구의 장모는 입원한 지 일주일 만에 숨졌다.
의사가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인 이유는 이렇게 환자의 운명을 바꿔줄 선택을 끊임없이 해야 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가 주로 찾는 곳은 개업의가 있는 동네 병원이다. 의사가 여럿 있어서 서로 보완이 가능한 종합병원과 달리 개업의는 그 선택을 혼자서 내릴 수밖에 없다. 일견 생각하기엔 잘 모를 때마다 “큰 병원 가세요”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그러면 안전하긴 하다. 하지만 단순한 코피를 가지고 큰 병원에 가서 시티(CT)나 엠아르아이(MRI) 등의 검사를 해야 했던 환자가 또다시 그 의사를 찾을까? 그러니 큰 병인지 아닌지만 분간할 수 있으면 좋은 의사라는 건 괜한 소리가 아니다. 개업의뿐 아니라 큰 병원이라 할지라도 임상의사라면 그런 선택의 순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터라, 의과대학 학생들이 남들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의사뿐 아니라 환자가 어느 병원을 선택하는지도 자신의 운명에 중요할 수 있는지라, 환자들 역시 좋은 의사를 구분하는 방법을 숙지해야 한다. 도대체 어떤 병원에 가야 할까. 내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련다. 병원 문앞에 내걸린 박사학위나 대기실에 있는 환자의 수는 의사가 명의인지와 하등 관계가 없다. 환자를 안심시켜주는 대신 “이제 오면 어떡하냐?”고 겁을 주는 의사는 일단 의심해야 하며, 과도하게 검사를 하는 병원도 믿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환자가 주사를 원하더라도 “맞을 필요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의사라면 신뢰해도 좋지 않을까. 그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아는 의사에게 소개를 받는 것이다. 사돈에 팔촌을 동원해도 아는 의사가 없는 분은 내게 메일 보내시라.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기생충학
bbbenji@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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