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혜정 이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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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90대 여성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무엇을 묻는 것인지.” 80대 여성은 “명절을 잘 모셔야 조상들의 덕이 있지.” 70대 여성은 “내가 바쁘게 움직여서 가족들에게 맛있는 것 먹일 수 있다면” 60대 여성은 “남편이 가볍게 보내자고 해도 이제는 이골이 났거든.” 50대 여성은 “며느리도 들어왔고, 모범을 보여야 잘 이어지지.” 40대 여성은 “다시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매년 똑같아.” 30대 여성은 “되도록이면 늦게 가서 시어머니가 시키는 것만 해요.” 20대 여성은 “딸이라서 일도 많고 이것저것 묻는 말도 많고 … 정말 명절 싫어요.”10대 여성은 “가족들의 만남이라는데 …, 고종사촌과 이종사촌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어요.” 이상은 필자가 만난 여성들의 ‘명절’(준비)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이다. 언제부터인가 연인원 이천육백만명이 움직인다는 ‘민족 대이동’ 명절 뉴스는 교통정체 소식과 그것을 피해서 귀향·귀경하라는 정보들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나 그 길을 타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어느 시간대에 어느 곳이 정체되는지. 하지만 항상 ‘올해는 낫겠지’라는 비합리적 기대를 하면서 전장에 나가듯 또 그 길을 탄다. 그래서 한국의 길들은 ‘몸살’을 앓는다. 그런데 몸살을 앓는 것은 길들만이 아닌 듯하다. 이 사회의 며느리들이 오줌소태, 쓰러짐, 체함에서부터 우울증, 분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증상을 호소한다. 최근에는 시어머니, 남편들, 비혼 여성들의 ‘속앓이’까지 합세해, 이른바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대중매체에서는 남성들에게 티브이 앞을 떠나서 ‘여성을 도우라’는 메시지를 보내더니, 몇 해 전에는 대선 주자들이 송편을 빚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먹고 마시는’ 명절이 아닌 ‘조상의 덕’을 기리는 명절을 맞이하라면서. 그러나 여성들이 몸살을 앓는 이유는 단지 일이 힘들어서만은 아니다. 그러니 이처럼 대중매체들이 이야기하는 요법들로 그들은 치유되지 않는다. 명절 전날인 친정아버지 제사에 갈 수 없는, 또는 외로운 명절을 보내시는 친정아버지를 외면하고 시가에 가야 하는 ‘시집간 딸들에게’ 이 사회의 명절문화는 너무나 가혹하다. 또 긴 휴가를 맞아 좀 쉬면서 ‘인사’ 정도만 하고 싶은데 시가에서 끊임없이 손님들을 접대해야 하는 여성들은 ‘대접받는’ 남성들이 정말 부럽다. 물론 위의 글에서 보듯이, 종부의 역할을 자신의 ‘팔자’로 여기면서 수십 년째 잘 하는 여성들도 있다. 오히려 ‘새로 들어오는 여자들’을 잘 교육시키는 것도 그녀들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딸들은 종부로 시집보내고 싶지 않다. 그러니 ‘시어머니’로서 ‘딸 같은’ 며느리를 보는 일은 괴롭다. 같은 여자로서 연대할 것인가, 아니면 팔자론을 내세우며 고부관계의 위엄을 부릴 것인가? 그러나 명절이라는 것을 왜 ‘이렇게까지’ 모셔야 하는지에 대해 상당수의 여성들은 의문을 갖지 않는다. 또 어떠한 가족을 만나는지, 누구의 조상을 모시는지 깊이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아니 시집온 이상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기는 것이 여러모로 속편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기적인 며느리, 유별난 며느리가 되기 때문이다. ‘남성들만의 명절에서 좋은 며느리 되기!’ 이것이 바로 그들이 병이 나는 이유이며, 그 병을 이해할 수 없는 남성들의 답답함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명절증후군’으로만 이야기하지 말고, 당당하게 튀어보자. “나도 내 조상들, 내 가족들과 만나고 싶다고! 나도 내 방식으로 명절을 맞고 싶다고!” 변혜정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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