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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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사무직 김씨가 한 끼를 먹는 데 필요한 에너지는 얼마일까? 근무하는 빌딩의 지하식당으로 간다면 10분을 움직이면 될 것이고, 이것도 엘리베이터 타는 시간과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을 뺀다면 5분만 걸으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5분 걷는 데 쓰는 열량은 20칼로리다. 설탕을 탄 커피 한 잔이 55칼로리이니 그가 소모한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석기 원시인이 같은 열량을 얻으려면 얼마나 운동해야 했을까? 만약 토끼 한 마리를 잡는다고 치자. 하루종일 뛰어다녀도 못 잡는 운 나쁜 날도 있을 것이다. 운 좋게 5시간 걷고 2시간 뛰어서 토끼 한 마리를 잡았다고 한다면 그가 소모한 열량은 무려 2400칼로리이다. 두 사람이 나누어 먹는다면 소비한 에너지와 섭취하는 에너지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나무 열매를 따먹는다고 하더라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운 좋게 야생으로 자라는 벼를 만나더라도 몇 포기 없었을 것이며, 과일을 만나기도 어려웠지만 당시 과일은 요즘 개량된 과일처럼 당도가 높고 알이 굵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거칠고 칼로리가 낮은 풀뿌리와 나무열매를 찾아 종일 걷거나 뭔가 씹어야만 했다. 이렇게 구석기 원시인들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비만 때문이다. 예전에 살집이 좀 있어야 후덕해 보이던 시절은 다 가고, 이제는 비만은 하나의 질병으로 규정되어 퇴치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나라 비만율은 20살 이상 성인의 31.7%에 이르는데 이는 1998년보다 7년 사이에 5.4%포인트 증가한 것이다. 문제는 어른만이 아니다. 초등학생들도 98년에는 12.1%가 비만이었으나 2005년에는 18.3%로 약 1.5배 증가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집계한바, 인류의 약 10억명이 과체중이고, 3억명이 비만이라고 하니 전 지구가 비만 때문에 몸살을 앓는 셈이다. 인류가 지구상에 발을 붙인 지 600만년이 되었다. 인류는 처음에는 구석기 생활을 했으나 약 1만년 전에 신석기 혁명을 겪으면서 떠돌던 구석기인들이 농경생활로 정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불과 수백년 사이에 인류의 삶은 또 한번 크게 요동쳤다. 현대 사회가 되면서 농업생산량의 변화가 영양 상태를 개선하였고, 육체노동을 하지 않는 인구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삶은 구석기 시대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생활을 하건만 인간의 몸은 아직도 구석기의 몸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 역사 600만년 중 599만년을 우리는 구석기 생활을 해 왔다. 신석기 혁명을 경험한 이후래야 1만년도 채 못 된다. 1만년이 한 인간에게는 장구한 세월이지만 진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찰나에 불과하다. 따라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해야 겨우 한 끼를 때우던 시절에 합당한 몸을 가진 인간들이 거의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고도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된 그 불균형이 비만으로 나타난 셈이다. 아마도 10만년 뒤에는 우리 인류도 현대인의 생활습관에 맞는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인류로 진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 가면 비만은 그리 큰 사회문제가 아닐 것이고, 비만 산업은 사양산업이 될 것이다. 결국 비만 문제는 10만년만 기다리면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이 없다면 구석기 인간을 몇 가지는 흉내 내며 살아야 한다. 앉아 있는 시간을 줄이고, 많이 걸어야 하고, 고도로 정제된 설탕이나 당분이 높은 음료를 줄이고, 육류를 줄이고, 칼로리가 적은 풀이나 채소를 더 많이 먹어야 할 것이다.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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