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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2.13 18:27 수정 : 2017.02.13 19:01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양말을 두 켤레 신었는데도 발이 꽁꽁 얼어붙었다. 기타를 쥔 손은 뼈마디까지 시렸다. 몸 곳곳에 붙인 핫팩도 소용없었다. 손가락이 끊어지고 입이 돌아갈 지경이었지만 경봉씨는 기타를 쳤다. 노래로 억울함을 알리고 싶었다. “미래의 경영까지 점을 치는 신 내린 무당인가. 미래의 경영까지 점을 치는 개떡 같은 법원이다.” 10년 전 4월12일 콜트악기 콜텍은 7년 동안 기타를 만들던 그에게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국내 공장을 없애고 직원을 몽땅 해고했다. 세계시장 점유율 30%, 박영호 사장 한국 부자 순위 120위, 인도네시아와 중국 공장을 신설한 회사에서 벌어진 일. 2014년 6월12일 대법원(주심 고영한 대법관)은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지금은 먹고살 만하지만, 장래에 직장을 잃을 수도 있어 아이를 고아원에 보낸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경봉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금요일 밤 영하 15도 한파가 몰아친 법원 앞에서 그와 동료들이 부른 노래는 ‘서초동 점집’이다.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이 ‘새로운 세상, 길을 걷자’는 이름으로 특검에서 삼성, 법원, 국회를 거쳐 청와대까지 1박2일 16킬로미터를 걸었다. “범죄의 소명이 불충분하고, 주거 및 생활환경을 고려”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풀어준 조의연 판사가 일하는 법원 앞. 노동자들은 법의 이름으로 재벌에겐 면죄부, 노동자에게는 ‘사법살인’을 해온 또 다른 조의연들의 이름을 호명했다.

2003년 7월22일 가스공사 노조 판결. 대법원(주심 이용우 대법관)은 “노동3권이 제한되지만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투자가 일어나면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된다”며 파업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빵을 키워 나눠먹자는 논리인데, 사내유보금 754조원을 금고에 쌓아놓은 재벌 대기업은 더 많은 고용 대신 더 많은 뇌물을 ‘창출’했다. 노동자들이 꼽은 세 번째 나쁜 판결은 2015년 2월26일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사건(주심 고영한 대법관)이다. 열차 차장은 공사 직원인데 승무원은 아니라니, 비행기 조종사는 항공사 직원, 승무원은 하청 직원인 회사가 어디 있는가. 경제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판사님들, 사장보다 기업을 더 염려하는 법관 ‘나리’들이 내린 ‘자본무죄 노동유죄’ 판결들이다.

‘조의연들’이 ‘신 내린’, 아니 ‘돈 내린’ 판결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준 건 다름 아닌 정치다. 김대중, 노무현 때 만든 정리해고제와 비정규직법, 신자유주의 민영화 정책이 ‘유전무죄’ 판결의 밑거름이 됐다. 과거에 대해 침묵한 채 문재인 안희정 이재명 후보가 앞다퉈 노동시간 단축과 비정규직 관련 공약을 내놓는다. 당신들 집권할 때 만든 노동악법부터 없애라. 170석이 넘는 야당, 집권 뒤가 아니라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널렸는데 국회는 대선 놀음뿐이다. 노동조합 전직 간부들까지 문재인 캠프가 문전성시란다. 민주당 정권 때 저들이 한 일을 잊어버렸나 보다.

1박2일 행진. 열아홉 청년이 안전문을 고치다 전동차에 치여 죽고, 삼성전자 비정규직 기사가 난간에서 떨어져 죽고,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바다에 빠져 죽는 일이 반복된다면, 열심히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 그런 세상은 또 다른 박근혜 세상일 뿐이라고,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들이 법원과 국회를 향해 외치고 또 외쳤다.

특검이 이재용을 다시 소환해 조사하고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모양이다. 설마 이번에도 조의연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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