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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5.31 18:20 수정 : 2017.05.31 21:02

이라영
예술사회학 연구자

여사님.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결혼한 여자를 높여 부르는 말”로, 흔히 여성을 높여 부르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가족관계 안에서 (기혼 여성이 남편의 손아래 여성 형제에게) 부르는 ‘아가씨’와 남성 접대를 위해 부르는 ‘아가씨’가 다르듯이, 여사님도 (남편의) 권위가 있는 여성일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부르는 의도가 달라진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시절에 영부인 권양숙씨를 두고 권양숙씨와 권양숙 여사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적이 있다. 한겨레 신문은 ‘권양숙씨’라고 표기했다가 영부인을 감히 ‘아무개씨’라 부른다며 독자들의 항의를 받아 이에 대한 해명을 하기도 했다. 2007년 10월 한겨레 기사다.

“<한겨레>는 1988년 창간 이래 역대 대통령 부인들을 모두 ‘○○○ 대통령 부인 ○○○씨’라고 표기해 왔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부인 김옥숙씨, 김영삼 대통령 부인 손명순씨, 김대중 대통령 부인 이희호씨…, 모두 이렇게 적어 왔습니다. 처음엔 저희도 낯설었습니다.”

여기서 ‘아무개씨’는 면전에서 당사자를 부르는 호칭이 아니라 중립적인 호명일 뿐이다. 지위가 높은, 정확히는 남편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에게는 ‘여사’라는 호칭을 쓰지 않았다고 지적받는 반면, ‘여사님’이 오히려 상대를 낮추는 차별이라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사례도 있다. 2016년 12월20일의 연합뉴스를 보면, “기간제 근로자 미혼여성이 ‘동료 공무원으로부터 여사님으로 불리며 인격권 침해를 받고 있으니 개선해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으며, “수원시인권센터가 ‘주무관’으로 부르는 일반 정규직 공무원과 달리 기간제·공무직 근로자를 ‘여사님’과 ‘씨’ 등으로 호칭하는 것은 차별하는 것이어서 시정해야 한다고 수원시에 권고”했다. 여기서 ‘여사님’과 ‘씨’는 모두 비정규직을 부르는 말로 상대를 낮추는 말이다. 이 사건에서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현실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성별이다.

대통령의 아내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여러 가지 문제들이 겹쳐 있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다. 다만 여성을 부르는 호칭이 항상 더 문제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여성의 위치가 독립적이지 못하고 가족관계 안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자. 남성에게는 사회적 위치에 따른 직함을 부르거나, 마땅한 직함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선생님’이 된다면 여성은 무슨 일을 하든 결혼 여부와 가족 중심의 호칭에서 돌고 돈다. 약사 언니, 간호사 언니, 식당 아줌마, 승무원 아가씨 등으로 뻗어나간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만약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었다면 2016년 11월10일 미국 일간지의 제목은 ‘마담 프레지던트’였을 것이다. 많은 언론이 ‘마담 프레지던트’라는 제목을 준비해 두었지만 써먹을 일이 없었다. 하나 여성을 높여 부르는 대부분의 호칭들이 애초에 혼인 여부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편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면 빌 클린턴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질문을 던질 정도로 남성을 ‘누구의 남편’이라는 측면에서 호명하는 일은 대체로 낯설다. 심상정 남편 이승배씨가 “심상정의 남편으로 불리는 것”이 영광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배경에는 ‘누구의 남편’으로 불리는 일이 그만큼 ‘누구의 아내’로 불리는 것과는 사회적으로 가지는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편이 죽어도 여자는 ‘미망인’이라 불린다.

누구를 부르는 행위에는 늘 권력의 개입이 있다. 직업적인 ‘콜걸’에서 권위 있는 여성을 부르는 여사님에 이르기까지, 모두 남성에 의해 남성을 기준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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