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리 유전학자 한국에서 과학이 뉴스가 되는 건 드문 일이다. 한국 뉴스는 정치로 시작해 스포츠로 끝난다. 문화적 파장력에서 과학은 정치와 스포츠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언론은 과학을 버린다. 평창올림픽과 예술단 공연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알렸다. 이를 잘 이용했던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은 건국 이후 최고 수준이다. 평창올림픽 이후 전세계가 그 강력한 외교력에 놀라고 있다. 이제 작곡가 윤상씨가 이끄는 예술단 공연이 평양에서 열렸다. 예술과 스포츠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훌륭한 도구였다. 뉴스엔 나오지 않지만, 남북한은 과학기술협력을 꾸준히 지속해왔다. 그 뿌리는 노태우 정부로, 1991년 ‘남북과학기술교류추진협의회’가 구성되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실질적인 정책연구가 이루어졌고, 당시 옥수수 박사로 유명한 김순권 교수가 슈퍼옥수수를 개발한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더 실질적인 교류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루어졌고, 북한 최초의 사립대학인 평양과기대가 설립되었다. 구속된 이명박과 탄핵된 박근혜는 남북한 과학기술협력도 단절시켰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 과학기술협력을 고려 중일 것이다. 다만 여기 몇 가지 제안을 더하고 싶다. 첫째, 장기적인 안목이다. 과학기술협력은 예술단 공연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의 사업이다. 이 교류사업은 통일 이후에도 지속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둘째, 지나친 응용과학 집중은 피해야 한다. 당장 농업이나 축산업처럼 북한에 필요한 응용과학 분야가 거론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먹거리와 생필품을 제공할 목적으로 응용학문 위주의 교류에 집중하게 되면, 그 필요가 사라졌을 때 북은 더이상의 교류를 원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창조경제나 4차 산업혁명 같은 구호에 집착하는 관료들에 대한 우려가 생긴다. 이 중대한 사업이 그들의 업적을 치장하는 포장지로 전락할 것 같아서다. 마지막으로 교류의 중심에 과학적 호기심을 지닌 현장의 과학자들이 있으면 좋겠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독일과 영국에서,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은 이념과 정치를 초월한 과학적 협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미국인 초파리 유전학자 허먼 조지프 멀러는 한때 러시아에서 유전학을 가르치다, 정치에 오염된 러시아의 리센코 유전학을 피해 도미하면서도 러시아 유전학자들과의 교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방사선의 돌연변이 유발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했고, 죽을 때까지 소련과 미국의 과학적 협력을 위해 노력했다. 굳이 동서독의 통일 이전에 거대한 과학기술협력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들지 않더라도, 예술단의 공연보다 더 중요한 교류가 문재인 정부의 과제로 남아 있음은 분명하다. 비어가는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을 북한의 청년들이 채울 수 있다면, 박사학위를 해도 안정적 직업을 구할 수 없는 한국의 이공계 박사들이 북한의 인재들을 교육하고 함께 연구할 수 있다면, 눈먼 돈이라는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금이 북한 주민이 처한 문제들을 풀고자 하는 스타트업 청년들의 적정기술 개발에 쓰일 수 있다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협력의 중심에 정치인이 아니라 과학자가 설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기초과학이 지닌 문화적 속성은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과학은 보편성을 지닌 유일한 학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문화도 국경을 초월하는 협력에 익숙하다. 남북의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인재 양성과 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해방 후 대표적 과학자였던 리승기는 북한으로, 이태규는 미국으로 떠나야만 했던 그 비극이 이제 치료될 수 있기를.
칼럼 |
[야! 한국 사회] 통일의 과학 / 김우재 |
초파리 유전학자 한국에서 과학이 뉴스가 되는 건 드문 일이다. 한국 뉴스는 정치로 시작해 스포츠로 끝난다. 문화적 파장력에서 과학은 정치와 스포츠를 넘지 못한다. 그래서 언론은 과학을 버린다. 평창올림픽과 예술단 공연은 남북관계의 새로운 국면을 알렸다. 이를 잘 이용했던 문재인 정부의 외교력은 건국 이후 최고 수준이다. 평창올림픽 이후 전세계가 그 강력한 외교력에 놀라고 있다. 이제 작곡가 윤상씨가 이끄는 예술단 공연이 평양에서 열렸다. 예술과 스포츠는 남북관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훌륭한 도구였다. 뉴스엔 나오지 않지만, 남북한은 과학기술협력을 꾸준히 지속해왔다. 그 뿌리는 노태우 정부로, 1991년 ‘남북과학기술교류추진협의회’가 구성되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실질적인 정책연구가 이루어졌고, 당시 옥수수 박사로 유명한 김순권 교수가 슈퍼옥수수를 개발한다는 뉴스가 화제가 됐다. 더 실질적인 교류는 노무현 정부에서 이루어졌고, 북한 최초의 사립대학인 평양과기대가 설립되었다. 구속된 이명박과 탄핵된 박근혜는 남북한 과학기술협력도 단절시켰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 과학기술협력을 고려 중일 것이다. 다만 여기 몇 가지 제안을 더하고 싶다. 첫째, 장기적인 안목이다. 과학기술협력은 예술단 공연과는 차원이 다른 형태의 사업이다. 이 교류사업은 통일 이후에도 지속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둘째, 지나친 응용과학 집중은 피해야 한다. 당장 농업이나 축산업처럼 북한에 필요한 응용과학 분야가 거론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먹거리와 생필품을 제공할 목적으로 응용학문 위주의 교류에 집중하게 되면, 그 필요가 사라졌을 때 북은 더이상의 교류를 원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래서 창조경제나 4차 산업혁명 같은 구호에 집착하는 관료들에 대한 우려가 생긴다. 이 중대한 사업이 그들의 업적을 치장하는 포장지로 전락할 것 같아서다. 마지막으로 교류의 중심에 과학적 호기심을 지닌 현장의 과학자들이 있으면 좋겠다.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독일과 영국에서,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은 이념과 정치를 초월한 과학적 협력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미국인 초파리 유전학자 허먼 조지프 멀러는 한때 러시아에서 유전학을 가르치다, 정치에 오염된 러시아의 리센코 유전학을 피해 도미하면서도 러시아 유전학자들과의 교류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방사선의 돌연변이 유발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했고, 죽을 때까지 소련과 미국의 과학적 협력을 위해 노력했다. 굳이 동서독의 통일 이전에 거대한 과학기술협력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들지 않더라도, 예술단의 공연보다 더 중요한 교류가 문재인 정부의 과제로 남아 있음은 분명하다. 비어가는 한국의 이공계 대학원을 북한의 청년들이 채울 수 있다면, 박사학위를 해도 안정적 직업을 구할 수 없는 한국의 이공계 박사들이 북한의 인재들을 교육하고 함께 연구할 수 있다면, 눈먼 돈이라는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금이 북한 주민이 처한 문제들을 풀고자 하는 스타트업 청년들의 적정기술 개발에 쓰일 수 있다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협력의 중심에 정치인이 아니라 과학자가 설 수 있다면, 참 좋을 것이다. 기초과학이 지닌 문화적 속성은 남북관계 진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과학은 보편성을 지닌 유일한 학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의 문화도 국경을 초월하는 협력에 익숙하다. 남북의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인재 양성과 인적 교류를 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해방 후 대표적 과학자였던 리승기는 북한으로, 이태규는 미국으로 떠나야만 했던 그 비극이 이제 치료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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