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회학 연구자 주진우 기자의 <저수지 게임>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영화여야 했을까’였다. 지면에 담기에 너무 방대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거나, 특별히 의미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한다거나, 그런 면은 찾기 어려웠다. 지면으로 쓸 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이미지에 바탕한 자극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데 익숙하도록 만들었다. 현실을 카메라가 ‘직접’ 만나면 ‘진실’을 보여준다는 믿음은 카메라에 포착된 현상의 단면을 과잉 신뢰하게 만든다. 여기에 애니메이션을 덧붙여 상상의 영역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면 더 강렬한 진실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이상호 기자가 만든 <김광석>이나 ‘프로젝트 부’라는 이름으로 김어준이 제작한 <더 플랜>, <저수지 게임>, <그날, 바다> 등과 같이 언론인이 만든 다큐멘터리는 신뢰를 주기 더 쉽다. 그동안 언론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유명한 언론인이 만든 다큐영화가 대안언론의 역할을 했다. 이러한 대안에 대해 이제는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 세월호 사건 관련 영화는 지금까지 여러 편 만들어졌다. 그중 <그날, 바다>가 다큐영화 기준으로는 흥행을 이어간다. 이 영화는 전문가의 과학적인 분석을 내세워 세월호의 고의적 침몰 가능성을 쫓는다. 이 영화에는 “소름 끼친다”는 말이 수차례 나온다. 직관과 촉을 강조해온 사람답게 김어준은 진실을 찾는 데 “아이들이 도와줬다”는 발언까지 하며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 그는 이러한 영화 제작이 자신의 애도 방식이라고 한다. <그날, 바다>를 비롯하여 무비 저널리즘으로 알려진 몇몇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영화를 만든 ‘나’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이다. 어렵고 위험한 일을 희생적으로 끈질기게 하고 있는 ‘정의로운 나’를 보여준다. 이상호, 주진우, 김어준 등이 거대악과 맞서는 구도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자료를 모았는데 수해가 나서 유실되었다, 관련인들이 협조를 안 해준다, 이런 식의 정의감에 취해 있다. 언론인이라는 직함으로 만들어내는 이러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사건이 아니라 그 언론인이 결국 주인공이 된다. 뭔가 있을 거 같지만 이들 영화를 열어보면 부유하는 음모론에 휩싸여 있거나 현실의 장벽에서 좌절한 언론인 자신의 모습이 강조된다. 정확한 사실이 없더라도 오히려 실패한 취재기를 보여주며 언론인 자신에게 시선이 향하도록 만든다.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진실의 이미지를 얻는다. 수년 전부터 우려스럽게 바라보던 무비 저널리즘 현상이 곪아터진 게 <김광석>이다. 영화로 진실게임을 하겠다는 몇몇 언론인들의 이러한 경향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급기야 이런 방식으로 세월호 사건까지 다룬다. 사람들은 영화에 설득된 것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떠돌아다니던 ‘비공식적 믿음’을 공식화할 수 있도록 구실을 제공한다. 그렇지 않아도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온갖 말들이 둥둥 떠다니는 이 세계에서 이렇게 모호한 저널리즘의 행태는 당분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거 같다. 영화는 저항의 도구가 되는 동시에 선동의 도구도 될 수 있다. 이윤을 내는 상품이며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메신저 역할도 한다. 이 ‘무비 저널리즘’의 외피를 두른 몇몇 영화는 진실을 수색한다는 명목으로 진실을 선동한다. 정답을 알고 있다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야말로 경계의 대상이다. 흥행하는 진실 곁에는 흥행하지 못하는 진실도 있기 마련이다. 진실은 경합해야 한다.
칼럼 |
[야! 한국 사회] 무비 저널리즘 / 이라영 |
예술사회학 연구자 주진우 기자의 <저수지 게임>을 봤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영화여야 했을까’였다. 지면에 담기에 너무 방대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거나, 특별히 의미 있는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한다거나, 그런 면은 찾기 어려웠다. 지면으로 쓸 수도 있었는데 왜 굳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미디어 환경의 변화가 이미지에 바탕한 자극을 통해 ‘진실’에 접근하는 데 익숙하도록 만들었다. 현실을 카메라가 ‘직접’ 만나면 ‘진실’을 보여준다는 믿음은 카메라에 포착된 현상의 단면을 과잉 신뢰하게 만든다. 여기에 애니메이션을 덧붙여 상상의 영역을 시각화하여 보여주면 더 강렬한 진실의 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 이상호 기자가 만든 <김광석>이나 ‘프로젝트 부’라는 이름으로 김어준이 제작한 <더 플랜>, <저수지 게임>, <그날, 바다> 등과 같이 언론인이 만든 다큐멘터리는 신뢰를 주기 더 쉽다. 그동안 언론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유명한 언론인이 만든 다큐영화가 대안언론의 역할을 했다. 이러한 대안에 대해 이제는 하나의 사회적 문제로 볼 필요가 있다. 세월호 사건 관련 영화는 지금까지 여러 편 만들어졌다. 그중 <그날, 바다>가 다큐영화 기준으로는 흥행을 이어간다. 이 영화는 전문가의 과학적인 분석을 내세워 세월호의 고의적 침몰 가능성을 쫓는다. 이 영화에는 “소름 끼친다”는 말이 수차례 나온다. 직관과 촉을 강조해온 사람답게 김어준은 진실을 찾는 데 “아이들이 도와줬다”는 발언까지 하며 감정적 동요를 일으킨다. 그는 이러한 영화 제작이 자신의 애도 방식이라고 한다. <그날, 바다>를 비롯하여 무비 저널리즘으로 알려진 몇몇 영화의 공통점은 모두 영화를 만든 ‘나’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다는 점이다. 어렵고 위험한 일을 희생적으로 끈질기게 하고 있는 ‘정의로운 나’를 보여준다. 이상호, 주진우, 김어준 등이 거대악과 맞서는 구도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자료를 모았는데 수해가 나서 유실되었다, 관련인들이 협조를 안 해준다, 이런 식의 정의감에 취해 있다. 언론인이라는 직함으로 만들어내는 이러한 다큐멘터리에서는 사건이 아니라 그 언론인이 결국 주인공이 된다. 뭔가 있을 거 같지만 이들 영화를 열어보면 부유하는 음모론에 휩싸여 있거나 현실의 장벽에서 좌절한 언론인 자신의 모습이 강조된다. 정확한 사실이 없더라도 오히려 실패한 취재기를 보여주며 언론인 자신에게 시선이 향하도록 만든다.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진실의 이미지를 얻는다. 수년 전부터 우려스럽게 바라보던 무비 저널리즘 현상이 곪아터진 게 <김광석>이다. 영화로 진실게임을 하겠다는 몇몇 언론인들의 이러한 경향은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급기야 이런 방식으로 세월호 사건까지 다룬다. 사람들은 영화에 설득된 것이 아니다. 이 영화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떠돌아다니던 ‘비공식적 믿음’을 공식화할 수 있도록 구실을 제공한다. 그렇지 않아도 가짜뉴스가 판을 치고 온갖 말들이 둥둥 떠다니는 이 세계에서 이렇게 모호한 저널리즘의 행태는 당분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거 같다. 영화는 저항의 도구가 되는 동시에 선동의 도구도 될 수 있다. 이윤을 내는 상품이며 동시에 이데올로기의 메신저 역할도 한다. 이 ‘무비 저널리즘’의 외피를 두른 몇몇 영화는 진실을 수색한다는 명목으로 진실을 선동한다. 정답을 알고 있다고 은밀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야말로 경계의 대상이다. 흥행하는 진실 곁에는 흥행하지 못하는 진실도 있기 마련이다. 진실은 경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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