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장애가 있는 아이들끼리 생활하던 재활학교 시절, 우리는 비장애인 청소년들을 성성이(썽썽이)라 불렀다. 몸이 ‘성하다’는 뜻이다. 성성이 친구나 연인이 생기는 일은 재활학교 내부에서는 자랑할 만한 사건이었다. 교복을 입고 시골의 재활학교로 친구나 연인이 찾아오면, 모두 그를 부러워했다. 관계는 오래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실연당한 친구에게 “어차피 성성이들은 대학 가면 거기서 연애하고 취직하고 애 키우고 잘 산다”(그러니 헛된 희망을 가지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도저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된 삶을 상상하기 어렵던 1990년대 말, 10대였던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세계를 ‘성성이’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으로 구별했다. 분리된 세계에서 우리는 공통의 정체성을 나누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신체적·사회적 속성과 경험에 따른 자기인식을 정체성이라고 부른다. 남들은 하찮고 부정적으로 여기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은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고, 연대한다. 주류 집단과 분리된 소수자의 정체성 각성은 해당 집단의 권리와 인정을 요구하는 이른바 ‘정체성 정치’로 나아간다. 장애인의 문제는 오직 장애인만 알 수 있다는 주장부터, “생물학적 남성”은 참가하지 못한다는 혜화역 시위까지, (폐쇄적) 정체성 정치는 한국 사회 전반에 등장하고 있다. 정체성 정치는 집단의 각성과 투쟁을 통해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에 맞서는 수단이 되지만, 어느 시점에는 보편적인 시민윤리로 확장되어야 한다. 보편화될 여지 없는 극한의 정체성 투쟁만 남을 때 일베도, 사이코패스도 정체성 정치를 전개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체성 정치가 결국 트럼프의 승리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전히 우리는 폐쇄적인 정체성 안에 남고 싶은 유혹에 직면한다. 며칠 전 한 장애인단체는 서울지하철 1호선을 연착시키는 투쟁을 전개했다. 휠체어 수십대가 지하철역마다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지난해 말 엘리베이터가 없는 1호선 신길역에서 한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를 타려다 계단에서 추락해 사망했는데, 서울교통공사는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이 분노하여 외쳤다. “저것들은 사람도 아니다”, “시설에 싹 쓸어 넣어야 한다”. 어떤 시민은 직접 이 단체에 이메일을 보냈다. “정상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너희들은 동정받을 생각도 말라”고 적었다. 출근 시간이 늦어지는 데 화나고 짜증나는 일이야 인지상정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어떤 욕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들은 세상이 ‘성성이’와 ‘병신’의 세계로 여전히 나뉨을 분명히 했다. 억압과 차별의 경험 아래에서도 보편윤리를 향해 가던 꿈틀거림이 처참히 무너진다. 욕설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몇년만 지나면 장애인들이 온갖 욕을 먹으며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함께 탈 시민들로 보였다. 장년층 남성들에 대한 혐오감이 일어난다. 꾹꾹 눌러 담는다. 대부분의 장년층 남성들은 그런 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노동자로서, 을로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자꾸 어린 시절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성성이들은 어차피 다 잘 산다. 헛된 희망 갖지 마라.” “생물학적 남성”들은 난민이고 트랜스젠더고 전부 성범죄 가해자들 아닌가? “강남 좌파”들이 흙수저의 고난을 알기는 할까?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 별에서 버텨야 한다. “너희 나라로”(난민), “네가 있던 시설로”(장애인), “집구석으로”(여성) 꺼지라는 비난을 받지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버티면 이 별에서 다 같이 살 것이다.
칼럼 |
[야! 한국 사회] 너희 별로 가지 마라 / 김원영 |
변호사·<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저자 장애가 있는 아이들끼리 생활하던 재활학교 시절, 우리는 비장애인 청소년들을 성성이(썽썽이)라 불렀다. 몸이 ‘성하다’는 뜻이다. 성성이 친구나 연인이 생기는 일은 재활학교 내부에서는 자랑할 만한 사건이었다. 교복을 입고 시골의 재활학교로 친구나 연인이 찾아오면, 모두 그를 부러워했다. 관계는 오래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실연당한 친구에게 “어차피 성성이들은 대학 가면 거기서 연애하고 취직하고 애 키우고 잘 산다”(그러니 헛된 희망을 가지지 말라)고 말하곤 했다. 도저히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된 삶을 상상하기 어렵던 1990년대 말, 10대였던 우리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세계를 ‘성성이’의 세상과 우리의 세상으로 구별했다. 분리된 세계에서 우리는 공통의 정체성을 나누었다. 단순하게 말한다면,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특정한 신체적·사회적 속성과 경험에 따른 자기인식을 정체성이라고 부른다. 남들은 하찮고 부정적으로 여기는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은 서로를 위로하고, 지지하고, 연대한다. 주류 집단과 분리된 소수자의 정체성 각성은 해당 집단의 권리와 인정을 요구하는 이른바 ‘정체성 정치’로 나아간다. 장애인의 문제는 오직 장애인만 알 수 있다는 주장부터, “생물학적 남성”은 참가하지 못한다는 혜화역 시위까지, (폐쇄적) 정체성 정치는 한국 사회 전반에 등장하고 있다. 정체성 정치는 집단의 각성과 투쟁을 통해 자신을 억압하는 세상에 맞서는 수단이 되지만, 어느 시점에는 보편적인 시민윤리로 확장되어야 한다. 보편화될 여지 없는 극한의 정체성 투쟁만 남을 때 일베도, 사이코패스도 정체성 정치를 전개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정체성 정치가 결국 트럼프의 승리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여전히 우리는 폐쇄적인 정체성 안에 남고 싶은 유혹에 직면한다. 며칠 전 한 장애인단체는 서울지하철 1호선을 연착시키는 투쟁을 전개했다. 휠체어 수십대가 지하철역마다 타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지난해 말 엘리베이터가 없는 1호선 신길역에서 한 장애인이 휠체어 리프트를 타려다 계단에서 추락해 사망했는데, 서울교통공사는 그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 시민들이 분노하여 외쳤다. “저것들은 사람도 아니다”, “시설에 싹 쓸어 넣어야 한다”. 어떤 시민은 직접 이 단체에 이메일을 보냈다. “정상인들에게 폐를 끼치는 너희들은 동정받을 생각도 말라”고 적었다. 출근 시간이 늦어지는 데 화나고 짜증나는 일이야 인지상정이다.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다만 어떤 욕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들은 세상이 ‘성성이’와 ‘병신’의 세계로 여전히 나뉨을 분명히 했다. 억압과 차별의 경험 아래에서도 보편윤리를 향해 가던 꿈틀거림이 처참히 무너진다. 욕설을 한 사람들은 대부분 몇년만 지나면 장애인들이 온갖 욕을 먹으며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함께 탈 시민들로 보였다. 장년층 남성들에 대한 혐오감이 일어난다. 꾹꾹 눌러 담는다. 대부분의 장년층 남성들은 그런 욕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딘가에서 노동자로서, 을로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자꾸 어린 시절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성성이들은 어차피 다 잘 산다. 헛된 희망 갖지 마라.” “생물학적 남성”들은 난민이고 트랜스젠더고 전부 성범죄 가해자들 아닌가? “강남 좌파”들이 흙수저의 고난을 알기는 할까? 그렇더라도 우리는 이 별에서 버텨야 한다. “너희 나라로”(난민), “네가 있던 시설로”(장애인), “집구석으로”(여성) 꺼지라는 비난을 받지만 우리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된다. 조금만 버티면 이 별에서 다 같이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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