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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1.14 18:32 수정 : 2019.01.15 09:31

김우재
초파리 유전학자

문재인 청와대를 ‘인문학 정부’로 규정한 건 김어준이다. 그는 문재인 정부가 상징을 잘 다루며, 이를 통해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었다고 말했다. 인문학 인재들이 청와대를 장악했고, 건강한 인문학의 힘은, 남북관계의 진전과 적폐청산의 길을 열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이공계 최후의 보루였는지 몰랐다. 학부에서 무기재료공학을 전공한 그와 더불어, 문미옥 전 과학기술보좌관, 그리고 도시공학과 출신의 김수현 정책실장이 청와대 이공계 트로이카였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한 신문기사는, 임종석 전 실장이 물러난 자리에 경영학과 출신이지만 전기공사 자격증을 딴 노영민 실장이 들어오기 때문에 청와대 이공계는 요지부동이라고 전했다. 참담하다.

‘오바마의 과학자’로 불린 존 홀드런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장에 따르면, 오바마 정부에선 노벨상 수상자 5명이 고위직에 올랐고, 내무부와 환경부 장관은 공학자가, 에너지부 장관은 물리학자가 두번 연속으로 맡았고, 구글 부사장 출신의 엔지니어가 국가최고기술책임자였다. 특히 이들은 일주일에 다섯번씩 대통령과 머리를 맞대고 국가의 과학기술정책에 대해 격의 없이 토론했다.

오바마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정부의 최상층에 강력한 과학기술팀을 포진시키고, 모든 연방기관을 관통하는 과학기술자문위원회(PCAST)를 구성했다. 문재인 정부도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조직하며 비슷한 정책을 펼치려 했다. 하지만 오바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 수립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건 기구의 유무보다 “정치적인 의사결정에서 자유롭고, 범정부 차원의 통합적인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거버넌스 체제”의 구축이었다.

정치지도자가 과학기술을 존중할 때의 정책기조는,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과학기술예산을 축소하지 않는 뚝심으로, 거대한 뇌연구 프로젝트와 장내 미생물 연구를 입안하는 추진력으로 나타난다. 트럼프 정부에 정권을 넘겨주면서도 오바마는 인공지능에 대한 정책적 유언을 남기는 걸 잊지 않았다. ‘인공지능, 자동화 그리고 경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가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새로운 시대를 맞아 사람들을 훈련시키며, 일자리를 잃는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로 여기서, 한국이 겪고 있는 택시업계와 카풀업체 사이의 갈등이 떠오른다. 세계적인 변화에 비해 우린 이미 너무 늦었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여부와 국가의 미래는, 바로 이 사회적 갈등의 해결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인문학 정치가 혁신성장을 포용할 수 없다면, 국가 간의 혁신 경쟁에서 한국이 승리할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혁신을 주도할 과학기술정책은 정치적 의사결정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정책이 정치적 의사결정에 좌우되는 상황이다. 한국 사회의 화두는 적폐청산 등의 소모적 논쟁에서 공유경제, 규제혁신 등의 건설적 토론으로 넘어가야 한다. 남북관계의 회복 또한 정치적 구호로서가 아니라, 과학기술을 통한 혁신성장의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청와대엔 이공계가 없다. 이공계의 시각으로 국가를 생각하는 고위직이 없다. 과학기술의 리더십은 실종된 상태다. 번번이 좌절되는 스타트업의 현실을 보며 한국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예측하는 건 이상하지 않다. 며칠에 한번 유니콘 기업이 등장하는 중국과, 실리콘밸리라는 심장을 지닌 미국을 보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삼성으로 이들을 상대하려 한다. 낡은 패러다임은 버려질 운명이다.

청와대 안에서, 대통령 곁에 서 있는 과학기술인과 젊은 창업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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