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4.22 17:54
수정 : 2019.04.2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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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2월 이석태 당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장이 특조위원과 증인들의 질문과 응답을 듣고 있다.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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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자유로운 직업이지만, 가끔 경력을 써내야 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되는 것이 있다. 2015년 1월1일부터 2016년 6월30일까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비상임위원’의 임기가 주어졌던 시간이다.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 능력이나 주제도 잘 모른 채, 그저 하지 않을 수 없는 무게 때문에 덜컥 맡은 일이었다. 청문회와 특검 요청이 권한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이런 안이한 생각으로 이 무거운 자리를 맡아서는 안 되었다. 이것이 이 반성문의 첫 줄이다.
인원과 예산, 대통령의 행적 조사, 문서 외부유출, 위원회 활동 기간, 핵심 인력 중 하나인 조사국장 임명 불승인 등 회의 때마다 실체적 진실규명이 아니라 위원회 활동의 기본조건을 얻기 위해 싸우느라 시간이 다 가버렸다. 이렇게 쓰고 나니, 그것이라도 과연 최선을 다해 싸웠나, 주어진 조건 안에서 전략적으로 생각하고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나, 도무지 답을 할 수가 없다. 생각만 많아서 다 내놓고 싸우지 않았던 그 시간을 반성한다.
다른 위원들이 많은 고생을 했지만, 적어도 나는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활동을 종료했다. 문득 ‘종료당했다’라고 써야 하나, 머뭇거린다. 마지막까지 모두 전 정부의 탓으로 돌리려는 이 머뭇거림을 반성한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9월, 보고서 작성 기간까지 지나자 위원회는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얼마 안 지나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고, 정부가 바뀌면서 선체조사위원회와 2기 특조위가 생겼다. 이제 제대로 된 정부가 들어왔으니 나아지겠지, 훨씬 좋은 분들이 알찬 성과를 얻으시겠지, 나는 사실 안도했던 것 같다. 사실은 책임회피였던 그때의 안도를 반성한다. 생각처럼 안 되었다는 말이 아니니 오해는 없으시길. 실제 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노력 중이다.
특조위가 문을 닫은 후, 1기 특조위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애쓸 때, 앞에 나서 무엇을 할 자신이 없어, 시간이 되는 목요일이면 재판을 방청하러 갔다. 특조위 활동 방해에 대한 직권남용 재판 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건너면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전직 장차관과 청와대 비서실장, 수석들 중 세 사람은 풀려났고, 처음에는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더니, 다음엔 이미 불기소된 해양수산부 공무원들 탓을 하고, 이제는 그 일 자체가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그런 재판이 이어지고 있다. 아는 기자들에게 중요한 재판이니 지속적인 관심과 취재를 하라고 권했지만, 한번도 재판에 빠지지 않는 유가족들을 빼놓고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후배들과 순번을 정하여 재판을 기록하자고 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바쁜 변호사가 이거라도 하는 게 어디냐, 이렇게 변명한 거였다. 이 변명을 반성한다. 그나마도 이사 후, 멀다는 핑계로 모두 후배들에게 미루고 있으니, 사실 변명의 여지도 없다.
벌써 5주기. 잊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며 추념을 하고, 리본을 챙기고, 며칠 눈물도 흘리고, 가족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이렇게 반성문 하나 쓰고. 나는 여전히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4월을 넘기려는 비겁한 마음도 반성한다.
‘이거라도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하는 일은,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냐’는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만 정당할 터인데, 정작 나 자신에게는 그 질문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그 질문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애써 잊고 있었던 시커먼 마음을 반성한다.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반성문 잘 쓴 아이를 칭찬한 적이 없다. 그다음 날 하나라도 달라진 아이가 칭찬을 받았다. 그럴듯하게 반성문을 쓴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나. 지난 1년간 지켜본 재판에 대해, 그 ‘방해’를 받았던 위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말을 적어야겠다. 이 반성문이 그저 벌을 덜기 위한 것이 되지 않으려면.
김진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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