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18 18:11
수정 : 2019.11.19 02:39
김우재 ㅣ 초파리 유전학자
한국 사회를 이끌어온 기득권 세력은 이제 좌우를 막론하고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명분을 잃었다. 일제의 잔재로 남아 오랫동안 기득권 유지에만 힘써온 보수세력은 탄핵으로 이미 상실한 지위를 거리의 타락한 목사에게 기대 지켜낼 뿐이다. 군사독재정권과 맞서 싸운 민주화세력은 벌써 세번째 정권을 잡았으나 좀처럼 활로를 찾지 못한다. 조국 사태는 이미 기득권이 되어버린 민주화세력에 대한 실망이 중층적으로 나타난 사건이다. 노동자의 친구로 투쟁해온 진보세력 또한 기득권이 되어버린 대기업 정규직 노조를 대변하며, 사회가 요구하는 상식적 변화 앞에 무기력하다. 이들 모두가 구세력이다.
해방 이후 정국을 주도해온 모든 세력은 기득권이 되었다. 기득권이 된 게 죄는 아니다. 문제는 이들의 정치에서 도무지 한반도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자들은 혁신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혁신은 기득권을 지키는 방향의 퇴보다. 조국은 민주화세력의 막내 세대이자 법학자였고, 서울대학교의 교수였으며, 정치경험 없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발탁되었다가 법무부 장관이 되었다. 그 여정엔 민주화세력이 한국 사회의 기득권이 된 과정이 녹아 있다.
민주화세력은 법을 수호하며 기득권을 유지했던 검찰과 기득권 전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 전쟁은 소모전이다. 박근혜를 탄핵시킬 때처럼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분명한 이익이 없다. 두 진영 모두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다. 무능하고 포악한 권력이 약해지면 사회가 조금은 나아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 전쟁을 통해 진짜 변하는 건 하나도 없다. 이 전쟁은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한국 사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눈을 돌려야 한다. 법과 정의, 언론과 검찰 개혁, 노동과 복지, 워라밸과 기본소득, 모두 한국 사회에 중요한 화두들이지만 사회를 밀고 나가는 엔진이 아니며 한국 사회엔 그 목표를 이룰 방법론이 결여되어 있다.
사회는 반드시 진보해야 한다. 진보에는 방향성이 있다. 그게 사회가 꾸는 꿈이다. 사회가 진보하려면 경제적 성장이 멈추어선 안 된다. 구세력은 형이상학적 도덕 원리를 내세우며 정치를 해왔다. 하지만 국민이 먹고살 길에 대한 비전과 계획이 없는 세력은 집권해선 안 된다.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진보는 한 몸이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 아래 펼쳐진 정책들은 아무런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일본 수출규제가 터지자 이제야 과학기술의 기반을 고민하고, 인공지능이 전세계적인 유행이 되자 이제야 부랴부랴 대학원을 세우는 정책으로는 수권은 물론 정치적 우위조차 선점할 수 없다.
카풀, 빈집 공유, 중고차 거래, 모빌리티 사업, 입시제도 등에서 현 정부와 진보세력이 보여주는 태도는 기득권을 지키는 쪽이다. 최소한의 규제와 노동자에 대한 배려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민간에서 혁신을 이루려는 젊은 혁신가들은 혹시라도 진급에 피해를 볼까 두려운 관료들의 공포 때문에 꿈을 접거나 탈조선을 감행해야 한다. 정부는 시그널을 줘야 한다. 젊은 혁신가인가 공무원인가. 이미 한국 청년의 대다수는 공무원이 되려 한다.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한국은 그런 모습인가?
모두가 검찰과 법무부 장관을 바라보고 있을 때 구글은 양자컴퓨터를 개발했고, 중국은 블록체인 굴기를 선언했으며, 페이스북은 페이스북 페이를 론칭했다. 바로 그 시기에 한국 검찰은 타다를 기소했다. 어느 편을 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엔진 없이 표류 중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 엔진을 점화시켜야 한다. 핵심은 과학기술이다. 전세계 유니콘의 대부분은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테크기업이다. 한국 사회를 진보시킬 엔진은 과학기술이다. 한국의 기득권은 바로 그 과학기술을 품지 못하는 구세력이다. 이제 무능한 기득권은 무대에서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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