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10.11 18:44
수정 : 2015.10.11 18:44
43시간의 마라톤협상 끝에 8·25 남북 합의가 나온 이틀 후 군 쪽에서 ‘참수작전’, ‘작계 5015’ 등 북한급변사태 관련 계획의 내용들이 흘러나왔다. 그건 남북관계에 대한 우리 쪽의 진정성을 의심케 만드는 대형 사고였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현 정부와 군에서는 북한급변사태-북한붕괴를 기본으로 삼고 있다는 뜻일까?
북한붕괴론은 1994년 여름부터 한반도 상공을 떠돌기 시작했다. 남북정상회담(7월25~27일)을 보름 남짓 앞둔 7월8일,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자 전문가들이 북한붕괴론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붕괴 예상 시점도 3개월 내, 3년 내, 심지어 30일 내 등 다양했다. 그러자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비용 계산 경쟁도 벌어졌었다.
북한 경제는 80년대에 제로 성장을 하다가 90년대부터는 마이너스 성장을 시작했다. 경제적 측면만 봐서는 북한붕괴론이 나올 만했다. 김일성 사후 북한 전체가 공황상태에 빠질 거라고 볼 수 있었다. 식량난까지 겹쳤다. 이 때문에 김영삼 대통령은 자주 북한을 ‘고장난 비행기’에 비유하면서 붕괴를 기정사실화했다. 정권 상층부도 대통령을 따라 했다. 결과적으로 김영삼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김일성 사후에도 북한은 붕괴하지 않았다. 부자 세습 후계자 김정일은 만 3년상을 치르면서 그 시간 동안 북한붕괴론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선군정치’로 북한 체제 결속을 다져 나갔다. 그런 연후에 98년 4월, 헌법을 수정하여 김일성 주석보다 권한이 훨씬 강화된 국방위원장에 등극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화해협력을 추진했기 때문에 대북정책에 북한붕괴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노무현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직접 북한붕괴론을 선도했다. “통일은 도둑같이 온다”, “통일이 임박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까지 했다. 정부가 통일비용을 계산해서 발표한 뒤 통일기금을 모은답시고 ‘통일항아리’도 만들었다. 남북관계가 꽉 막혀 있던 상황에서 이런 움직임은 북한붕괴를 전제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 북한붕괴론이 더 탄력을 받는 것 같다. 작년 1월6일 기자회견 말미에 박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다”라고 힘주어 외쳤다. 그 뒤 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북한 엘리트 처리 방안’을 연구한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지난 7월10일 통일준비위원회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내년에라도 통일이 될지 모르니 준비를 더욱 잘 하라”고 당부했다. 북한급변사태-북한붕괴가 임박했다고 믿어야만 할 수 있는 움직임들이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붕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 북한은 왜 아직까지 붕괴하지 않는가? 아직도 탈북자가 나오는 경제 상황, 고모부도 총살하는 무자비한 정치 상황만 보면 북한붕괴 요인은 있다. 그러나 한 체제는 붕괴 요인과 함께 유지 요인도 가지고 있다. 마치 사람 몸에 발병 요인과 함께 면역력 등 예방 요인도 있듯이. 바깥에서 붕괴 요인으로 중시하는 철권정치-공포정치, 바로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북한 체제 유지 요인으로 작용한다. 인구의 10%만 체제로부터 혜택을 받으면 그들이 나머지 90%를 찍어 누르면서 체제를 유지해 나간다는 정치이론도 있다. 북한은 인구 2500만 중 300만 노동당원과 115만 군대를 통해 유례없는 통제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반체제를 꿈꾸고 세력을 조직할 수 있겠는가? 이런 현상은 ‘북한 패러독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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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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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붕괴론이 20년 넘게 한반도 상공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남쪽에 진보정권이 서면 모습을 감췄다가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대낮에도 활개친다. 그러나 북한붕괴론은 아직 현실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북한붕괴를 믿고 ‘통일준비’에만 주력하면 남북관계는 악화되고 북의 작은 변화도 유도하지 못한다. 그러나 일단 북한 체제 유지를 전제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가면 군사긴장도 줄이고 북한의 변화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세현 평화협력원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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