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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27 18:13 수정 : 2018.02.27 19:23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다른백년연구원장

이제 한국은 한 단계 질적인 변화를 감행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경제 정책 인프라 구축이다. 현재와 같은 취약한 정책 인프라 상황에서는 불평등, 고령화, 탈산업화, 지구 온난화, 동아시아 안보 불안이라는 엄청난 내외적인 도전에 맞설 수 없다.

평창겨울올림픽의 감동적인 여러 장면들, 남북 교류의 훈풍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도 한국의 힘으로 얻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주었다. 그러나 축제가 끝나고 외국인들이 자기 나라로 돌아간 지금, 우리는 차가운 일상을 다시 마주한다.

경제지표가 호전되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청년들은 여전히 실업, 주거불안 그리고 기성 질서의 벽 앞에 우울하다. 한국지엠(GM)의 폐업 협박과 트럼프의 무역보복 압박에 온 국민은 불안하다. 지난 1년 전 추운 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박근혜 탄핵을 외친 1700만명의 시민이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고, 이 정부가 변화의 희망을 주고 있지만, 그 두 배인 3천만명이 거리로 나왔더라도 청년실업, 양극화, 주거빈곤 문제를 해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혁명의 열정과 축제의 환희는 순간이지만, 현실 권력관계, 법과 제도는 피할 수 없는 엄혹한 일상이다. 재벌 총수의 반사회적인 범죄는 범죄가 아니라는 판사, 이 정부가 하는 모든 일에 ‘색깔’을 씌우는 제1야당, 국민을 ‘개돼지’라 생각하는 고위관료들이 다스리는 나라는 시위만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제도 정치의 변화가 절실하다. 이들 실업 청년, 기업 구조조정의 피해자, 주거빈곤 시민들의 고통을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국회가 채워져야 한다. 그래서 시위는 권력 변화로 반드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제도 정치는 선거 공학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정치가나 정당들도 표를 얻을 수 있는 일에 기울어지기 쉽다. 즉 정권이 힘을 가져도 정작 구조적 과제는 뒤로 제쳐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정당과 정치가들의 의지나 힘이 있어도 그것이 비전, 정확한 현실인식, 그리고 정교한 방법론에 기초하지 않으면 애초의 의지와는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래서 정책 기반이 없는 정치는 매우 위험하다. 정책은 정치에 크게 좌우되지만 그 이상의 것, 즉 ‘국가의 일’이다. 저출산, 고령화 대비, 대학교육, 자살방지 정책 등 사회정책의 예를 보면, 비교적 정치성이 약한 정책들도 지난 20여년 동안 수백조원의 예산을 지출하고도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든 사실이 있다. 차라리 4대 강에 수십조 돈을 퍼붓는 과정에 협조한 공무원이나 전문가를 문책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사회경제 사안은 원인도 매우 복잡하기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묻기도 쉽지 않다. 이런 복잡하지만 장차 국가의 운영을 좌우하는 중요한 사안을 처리할 능력이 곧 국가 능력이다.

즉 정책이 정치보다 중요한 이유는 정책 수립의 근거가 되는 국가의 자료가 정리·축적되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며, 그것에 기초해 정책을 수립할 공공심 있는 전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료 인프라가 구축되고 공공심 있는 전문가가 길러지기 위해서는 오랜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고,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 정치가가 곧 정책전문가이면 가장 좋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에 이런 집단은 별도로 육성되어야 한다.

촛불시위를 비롯한 지난 시절 한국의 대중 저항은 민주화의 동력이었다. 그러나 저항운동이 곧 문제해결 의지를 갖는 정치세력과 정책 대안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기존 국가 관료, 학자 등 전문가들은 부패하고 무책임했으며, 창의성과 전문성에서도 큰 결함이 있었다. 그래서 대중의 저항은 대체로 최종 책임 주체인 정권에 대한 실망으로 귀결되었다.

수입한 기술과 이론에 의존해서 한국이 이만큼 온 것도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한 단계 질적인 변화를 감행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회경제 정책 인프라 구축이다. 현재와 같은 취약한 정책 인프라 상황에서는 불평등, 고령화, 탈산업화, 지구 온난화, 동아시아 안보 불안이라는 엄청난 내외적인 도전에 맞설 수 없다. 정권의 의지만으로 이 복잡하고 도전적인 과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과거 두 민주정부의 경험, 정부 부처, 국책연구소, 대학, 민간의 정책 인프라, 지식생산 실태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이 시급하다.

외교안보도 그렇지만 사회경제 정책은 외국의 것을 수입·가공해서 사용할 수 없다. 그것은 반드시 한국의 역사, 국내의 자료를 동원해서 독자적 이론, 즉 창의적인 ‘개념 수립’ 능력을 갖춘 전문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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