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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4.09 17:39 수정 : 2019.04.09 18:52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부동산중개업소 앞을 시민들이 지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 사회’를 내걸었지만, 지난해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의 국제노동권리지수 조사에서 한국은 5년 연속 꼴찌 등급을 받았다. 즉 한국은 ‘노동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 즉 노동권이 지켜진다는 보장이 없는 나라이며, 라오스와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필리핀 등과 같은 부류에 속해 있다. 실제 한국 노조 조직률이나 단체협약 적용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거의 최하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며칠 전 대통령의 입, 김의겸이 재직 중 상가 투자를 했다가 국민들의 비판을 받고 물러났다. 역대 정부에서 주택정책 핵심 역할을 맡았던 최정호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국토부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갭투자, 특별분양 당첨 등으로 막대한 수입을 거둔 것으로 드러났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도 자녀 ‘황제 유학’,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다.

‘노동 권리 바닥’과 ‘부동산 투기’는 별개의 일처럼 보이나 사실 같은 동전의 다른 면이다. 교육-부동산 열병은 노동시장에서의 안정과 행복, 그리고 사회복지로 노후 보장이 안 되는 현실을 거꾸로 표현하고 있다. 노동자 무권리 상태, 위험한 산업 현장에서 죽어나가는 비정규직 청년들의 모습은 자녀 교육에 사활을 걸도록 유도하는 강력한 신호다. 이것은 노동자 권리 제고와 재분배에 대한 사회 전체의 무관심으로 나타난다. 노동이 존중받고,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면 중하층까지 자녀 교육과 부동산에 ‘미칠’ 이유가 없다.

즉 학벌 자격증, 기초 자산 축적을 통한 부동산 투자 기회 획득은 ‘갑’이 될 수 있는 관문이고, 여기에 들어가지 못하면 건물주와 사용자의 횡포 아래 ‘을’의 처지에서 힘들게 살아야 하고, 그 자녀들도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아가거나 연애와 결혼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스카이(SKY) 캐슬’ 진입을 위한 사교육 시장과 떴다방은 전쟁터다. 사교육 시장은 곧 ‘노동자 안 되기’ 전쟁터고, 떴다방은 ‘캐슬 진입’ 전쟁터다.

이런 전쟁판은 7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개발독재는 노동자 권리 주장을 억압함과 동시에, 각종 기업 특혜와 낮은 조세, 개인 저축과 교육 기회를 통한 가족 단위의 투자를 유도했다. 주거, 교육, 의료, 노후복지는 가족 책임으로 돌렸고, 개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공직자, 엘리트층 다수는 집을 계속 사고팔아 중상류 계급이 되었다.

김대중 정부 이후 크게 늘어나기는 했으나 여전히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공사회복지지출 비중이 오이시디 최하위 수준이다. ‘민주화’ 세력도 노동자들의 집합적 권리 증진을 통한 소득분배, 조세부담률 제고와 복지지출의 획기적 확대를 기초로 중하위 계층이 교육과 주거 등 재분배 영역에서 사적 부담을 덜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려 하기보다는, 스카이 졸업장이라는 문화자본과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기초 자본을 지렛대로 ‘캐슬’에 진입하려 했다.

촛불이 대중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실패한 혁명이 될 것이다. 개발독재, 재벌 주도 성장, ‘교육-부동산 가족투자 시스템’ 개혁은 1987년 민주화 이후의 최대의 시대적 과제였으나, 김대중·노무현 두 정부도 경제논리에 밀려 결국 이명박·박근혜의 퇴행을 불러오고 말았다. 그래서 학교는 여전히 노동자의 ‘권리’와 공공적 책무 대신에 입시 ‘성공’만을 주로 가르치니, 자신이 노동자라는 자각조차 없는 청년들은 ‘투자자’의 대열에 기웃거리다가 그게 어렵다는 것을 알면 ‘소확행’의 철학에 공감하게 된다.

한 가족의 가장이 된 공직자나 엘리트들이 투자 정보를 접하고도 외면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시스템을 활용해서 큰 이득을 얻은 사람이 권력까지 차지한다면, 국민들은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신호로 해석할 것이다. 즉 노동존중과 포용사회는 공허한 소리가 된다.

물론 수십년 누적된 이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2016~2017년 촛불시위는 박근혜 권력 농단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부당하게 획득된 부와 지위가 ‘약자의 권리를 누르는’ 제도적 무기가 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 아니었던가? 높은 국민적 지지를 받고 시작했던 ‘촛불정부’가 이런 교육-부동산 가족투자 시스템 개혁을 시도하지 않고 오히려 그 시스템을 약삭빠르게 이용해서 성공한 사람들을 요직에 발탁한다면 도대체 우리는 언제 어떤 정권에 시스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청년과 국민들의 삶이 달라지지 않는 것은 경제가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김동춘
성공회대 엔지오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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