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22 18:38
수정 : 2014.10.22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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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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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부터 18일까지 중국에 다녀왔다. 동아시아재단과 베이징(북경)대가 지난해부터 시작한 ‘베이징대 한중관계 대화’에 참석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중국에 머무는 동안 공식·비공식적으로 많은 한반도 및 외교·안보 전문가를 만나 한-중 관계에 대해 폭넓은 의견을 주고받는 기회가 있었다.
중국 전문가들의 의견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경열정랭(經熱政冷)의 양국 관계가 박근혜 정부 들어 경열정온(經熱政溫)의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한국에 배치하려 하고 있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로 인해 커다란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짐작하는 수준보다 훨씬 강하고 심각한 반응이었다. 한국 쪽의 한 참석자가 중국 쪽의 직설적인 발언에 ‘총을 맞은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할 정도였다.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소, 중국현대국제과학연구원, 베이징대, 정법대 등에서 나온 전문가들은 어조의 강약과 강조점에 다소 차이가 있긴 했지만 사드 배치가 몰고 올 한-중 관계의 역풍에 대해서는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 북한의 붕괴에 대비한 한-미-중 3국 협의체의 필요성을 제기할 정도로 친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자칭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조차 “사드가 한국에 배치되면 중국이 기분 좋을 리 없다. 반미·반한 정서가 중국 안에서 일어날 것이고 북한 문제 등 한-중 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군인 신분의 한 전문가는 “사드 배치는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안보적으로 한국이 중국의 친구에서 전략적 타격의 목표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대놓고 경고를 했다. 그 중간쯤에 있는 연구자들도 ‘한-중 관계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거나 ‘20여년간 한-중 관계가 힘들게 큰 발전을 해왔는데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쪽의 반대 논리는 명확했다. 남북 사이는 거리가 너무 가까워 사드로는 북한 미사일을 기술적으로 요격할 수 없는데도 미국이 굳이 한국에 배치하려는 것은 한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평양과 서울의 중국대사관에서 무관 근무를 한 바 있는 양시롄 정법대 한반도연구중심 객원연구원은 더 나아가 “한국에 미사일방어를 들여와야 하느냐 마느냐는 문제는 내가 서울에서 근무하던 1998년부터 나왔는데, 한국 정부는 줄곧 반대 입장을 유지해 오다가 올해부터 큰 조건의 변화가 없는데도 입장을 바꾸고 있다”고 꼬집었다.
물론 중국 전문가들의 강력한 사드 반대론 속에는 한국을 미-일 중심의 대중 포위망에서 떼어내려는 전략적 의도에서 나온 과장된 표현이 담겨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점을 고려하더라도 우리 쪽의 인식은 안이하고 자기중심적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7일 국정감사에서 말한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비한 가용수단이 제한되는데 사드를 배치하면 우리 안보와 국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로는 중국의 무거운 우려를 씻어주기 어려워 보인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주한미군에 사드 배치를 허용한다면 이는 중대한 안보정책의 변화이다. 국방장관이 답변할 군사 문제가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라 안팎에 책임 있게 설명해야 할 중대 사안이다. 그런데도 정부 안의 외교안보 관련 부서 간이나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이 문제를 올려놓고 의견을 조정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바 없다. 대통령이 이에 대해 어떤 입장에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중국이 이 정도로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최소한 중국에만이라도 각종 통로를 통해 긴급하게 우리의 입장을 정확하고 책임 있게 전달해야 한다. 한-중 사이에는 2000년 마늘 파동이라는 악몽이 있다. 충분한 사전 대비 없이 중국산 마늘 상품의 관세율을 대폭 올렸다가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 중지라는 보복을 당하고 속절없이 백기투항했던 사건이다. 지금처럼 엉성하게 대응하다간 사드가 그때와 비교도 할 수 없는 폭풍을 몰고 올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시간이 없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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