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27 19:49
수정 : 2009.02.2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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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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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1990년대 이후 스웨덴의 인구사회 통계조사를 보면 16~24살 젊은이, 특히 여성들의 자살률이 증가하고 있다. 청소년복지 당국은 스무살 안팎의 연령층에서 “정신적 문제가 있다”는 주관적 느낌이 최근 20년 새 현저히 증가해 왔다고 말한다. 특히 여성 집단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1980년에는 해당 연령대 여성 중 8%만이 지속적인 근심과 정신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 수치는 불과 25년 만에 30%로 급증했다. 같은 연령대의 남성은 그 절반 수준이다.
경종을 울리는 또 다른 사실은, 학생들의 장기 결석, 식이장애, 기타 다른 문제들이 학교 현장에서 일상화됐다는 것이다. 10대들에게 까닭을 묻는다면, 사회적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스트레스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수행해야 한다는 데서 생겨난다. 학교 성적이 나빠질까, 구직에 실패할까, 졸업 뒤 살 곳을 못 구할까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얼핏 건전하게 들리는 ‘평생 학습’ 같은 구호도, 자세히 살펴보면 젊은이들이 자신의 불확실한 상태가 개인적 실패의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허위 메커니즘의 가면이다.
젊은이들을 압박하는 것은 성적만이 아니다. 경쟁과 라이벌 의식으로, 또래들 사이에서 항상 멋지게 차려입어야 하고 최신 유행의 브랜드 제품을 갖춰야만 한다는 따위 감정과 싸워야 한다. 자기주장이 약할수록 남의 눈을 끄는 소비에 의존하게 된다. 그 결과는 종종 빚을 지거나 마약에 취해 상황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치닫는다. 또 다른 심각한 현상은 폭력을 동반하는 약자 괴롭히기다. 학교 밖에서도 학생들은 압박에 시달린다. 학생들은 삶의 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알게 되고,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받는다. 선택의 ‘자유’는 진짜 자유가 아니다.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이라는 주변의 기대 때문이다.
청소년 정신건강 당국과 기관들은 원인과 치료법에 대해 심도 있는 토론을 한다. 문제는, 전문가들 대부분이 도움을 요청해 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기관에 찾아오는 10대들이 늘고 있지만, 그 수는 여전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미 학교에서 패자가 된 마당에 ‘(정신적으로) 문제 있음’이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가족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이와 비슷한 측면이다. 부모가 근로 시간의 제약이 없는 노동에 매달리는 구조적 이유는 제쳐두더라도 말이다. 청소년들은 또래 집단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족 안에서도 문제를 꺼내놓는 데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이런 현실에 직면한 상류사회에서는 권위주의적 교육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랑과 관용에 기초한 양육을 주장했던 이들은 곤혹스런 처지에 놓였다. 이 문제는 개별 부모들뿐 아니라, 사랑과 관용으로 아이들을 품어주는 것에 무능력한 사회 전체가 해답을 내놔야 한다.
이런 문제들을 적절하게 풀어가지 못하는 것은 유럽이 아직도 포스트-트라우마(양차 세계대전 이후 외상 후 증후군)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폭력의 역사를 지나온 모든 현대 사회가 그렇다. 부모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참기 힘든 공포 속에서 살며, 감정을 마비시키기 위해 스트레스에 중독되어 있는 한, 아이들을 믿음과 열린 태도로 대할 수는 없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문제와 공포, 공격성까지 억지로 드러내 보이려 할 경우, 부모들 자신이 조심스럽게 억눌러 왔던 감정들에 직면하게 될 위험성이 있다. 억압과 폭력의 악순환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새로운 치료법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뿌리깊은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다.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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