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6.23 21:33
수정 : 2010.06.23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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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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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지금 당장은 재정붕괴를 모면하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의 미래와 유로존의 운명은 여전히 위기다. 만약 유럽이 경제를 다시 활성화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누가 유럽 프로젝트를 방해했느냐”를 두고 서로를 끝없이 비난하는 음울한 운명에 처할 것이다. 경제회복도 더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로존이 올해 고작 1% 성장하고 내년에도 1.5%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유럽의 성장은 부채 문제와 그리스 같은 채무국들의 상환능력 우려 때문에 제약을 받고 있다. 민간부문이 부채를 줄이고 재무제표 건전성을 회복하려 하면서, 소비와 투자 수요는 무너졌고, 생산도 침체했다. 유럽 지도자들은 지금까지 성장 문제에 대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것 외에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성장은 시장의 신뢰를 요구하는 것 같다. 또 시장의 신뢰엔 재정 축소라는 대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내수 수요가 붕괴하는 와중에 재정적자를 바로잡으려는 것은 문제를 오히려 악화시킨다. 경제가 위축되면 민간과 공공부문 부채는 더욱 버틸 수 없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것은 시장 신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사실 그것은 악순환을 일으킨다. 경제성장 전망이 나쁠수록 재정상태를 바로잡고 부채를 줄일 필요성이 커진다. 그러나 재정 교정과 민간부문의 부채 감축이 클수록 성장 전망은 나빠진다. 부채를 없애는 최선의 방책은 성장이다.
그러므로 유럽이 재정지원 정책과 재정 통합책을 쓰기 위해선 단기성장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전략을 실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다. 독일은 재정과 대외 계정이 탄탄했음에도, 내수 수요를 더 늘리라는 요청에 저항해왔다. 독일은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해왔다. 올해에는 국내총생산의 5.5%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은 미국이나 유럽의 스페인과 그리스 같은 적자 국가들에 감사해야 한다. 독일 산업을 유지하고 실업률 증가를 예방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그리고 아일랜드 같은 나라들에 닥친 종류의 위기를 치유하는 전통적 방법은 재정긴축과 통화가치 평가절하를 함께 하는 것이다. 후자는 경쟁력 회복에 즉효가 있고 대외수지 균형 개선에 도움이 되며, 생산 감소와 실업을 완화시킨다. 그러나 유로존 회원국들은 이런 강력한 도구의 사용을 허용하지 않는다.
쓸 수 있는 다른 수단은 아주 적다. 국제기구들과 이코노미스트들은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구조조정은 기업에 노동자들을 더 쉽게 해고할 권한을 준다는 뜻이다. 구조조정이 장기적으로 어떤 이득을 주든 간에, 당장 어떤 이득이 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유로존 탈퇴를 제외하고, 그리스와 스페인, 그리고 경쟁력을 높이려는 다른 국가들에 남은 유일한 현실적 대안은 각종 서비스 가격과 명목임금을 전면적으로 한꺼번에 인하하는 것이다. 가장 우호적인 환경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이는 서비스 가격과 임금을 10% 이상 낮출 필요가 있다는 뜻인데, 유럽중앙은행의 낮은 인플레이션 목표(2%)는 이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
독일 지도자들은 느긋하게 다른 나라 정부들에 그들의 방탕함에 대해 잔소리를 할지 모른다. 그리스 정부 같은 몇몇 정부는 좋았던 시절에 재정적자를 너무 키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채무자가 정부가 아니라 민간부문인 스페인이나 아일랜드는 어떤가? 다른 나라들이 빚을 너무 많이 냈다면, 독일은 지나치게 많은 돈을 꿔준 것은 아닌가?
독일은 유럽 다른 나라들이 재정축소라는 쓴 약을 삼키길 원한다면 그에 대한 보상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독일은 내수 확대와 대외 흑자 감축을 약속하고 유럽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목표치 상향조정을 수용해야 한다. 독일이 이 거래의 자기 몫을 빨리 이행하면 할수록 모두가 더 나아질 것이다.
대니 로드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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