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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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럽에선 기성 정당 체제가 혼돈으로 빠져들고 있다. 최근 몇십년은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를 가장 매력적인 슬로건으로 내건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출현하고 연대하는 시기였다. 이런 경향은 서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나타났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덴마크의 우파 정당들은 직간접으로 정부에 참여한다.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프랑스에서도, 극우파인 국민전선이 약 15%라는 무시할 수 없는 득표력을 갖고 있다. 스웨덴에서도 지난여름 총선에서 예견됐던 대로 극우정당인 스웨덴민주당이 의회에 진출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와 달리 스웨덴의 집권여당인 온건당과 야당인 사회민주당은 연정 구성이 막히더라도 ‘선동자들’에게는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선언했다. 유럽 각국의 정부들은 갈수록 엄격한 이민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공식적으론 개방과 관용의 수사를 남발하면서 말이다. 유럽 대다수 국가들이 국경을 개방한 1990년대 이후로, 유럽연합(EU)은 이민규제를 강화하고 난민정책도 더 엄격하게 해왔다. 이런 흐름의 대표적 조처는 지난달 유럽연합과 리비아 간의 협약이다. 리비아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들어가려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붙잡기 위해 리비아가 유럽연합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받고 억류와 추방이라는 더러운 산업을 유럽연합과 분담한다는 것이 요지다. 개별 국가들의 극적인 처방도 잇따랐다. 이탈리아는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보트피플들을 무차별 대량 추방했다. 프랑스는 수천명의 집시들을 내쫓았다. 그런 조처들은 유엔난민협약 및 유럽연합 헌장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지만, 소란은 그때뿐이었다. 제노포비아를 이념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맞지 않다. 제노포비아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작동 원리다. 자본의 수익성은 노동력의 비용 수준이 다른 생산지들을 고를 수 있다는 데서 나오기 때문에, 무분별한 이민의 확산을 막기 위해 국경은 철저히 보호되고 통제되어야 한다. 전세계 광범위한 지역의 구조적 빈곤화는 사람들이 가난과 억압과 전쟁을 피해 부유한 나라들로 탈출하려는 거대한 흐름으로 이어진다. 이주는 집단적인 현상이 됐다. 그러나 부자 나라들이 자본이득을 늘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숙련노동력을 중·단기적으로 보장하는 ‘선택적 이주’다. 세계화는 통제와 억압 도구들이 상상도 못했을 만큼 확장되는 과정임이 드러났다. 자유의 전제조건과는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과정이다. 사실 이것은 낡고 비이성적인 인종주의가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선을 긋는 새로운 인종주의다. 여기에 개입한 정부들의 이념적 문제는 유권자들에게 이런 정책들의 필요성을 어떻게 팔아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유엔인권협약, 특히 난민에 대한 국제협약과 실물경제의 요구 사이의 모순은 원칙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다.
본질적으로 이 모든 과정은 ‘마약과의 전쟁’이나 ‘테러와의 전쟁’과 마찬가지로 ‘공포의 정치’다. 공포는 권력의 유지와 확장에 도움이 된다. 제노포비아는 외국인들의 틈입에 따른 사회적 정체성 상실의 공포다. 전 독일 연방은행장인 틸로 사라친이 이슬람과 서구 문화의 양립 불가능성을 주장한 신간의 제목인 <독일, 자신을 폐지하다>는 이런 맥락의 전형적인 텍스트다. 근대의 폭력적 역사 때문에 공포는 근대사회의 한 구성요소가 됐다. 공포는 새로 만들어진 게 아니다. 각 정부와 정당들은 잠재적인 여론의 흐름을 정치권력에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우파 포퓰리스트 그룹과 정당들에 대한 경고에 집중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 방식은 새로운 공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고 제구실을 못하는 주류 정치권을 멀어지게 할 뿐이다. 제노포비아 반대 운동을 위해선 공포의 뿌리깊은 시원을 인식해야 하며, 그것이 활용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깨뜨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집단공포와 맞서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홀거 하이데 독일 사회경제행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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