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9.11 19:39
수정 : 2012.09.11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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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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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국제사회에는 북한이 개혁개방에 들어섰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만큼 북한이 보여준 행보는 파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개혁’을 극구 부인한다. 북한의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해가 서쪽에서 뜨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 왜일까? 북한 사전에서 ‘개혁’이란 “낡은 제도 같은 것을 근본적으로 새롭게 뜯어고치는 일”이다. 토지개혁이나 민주개혁을 예로 든다.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북한은 결코 개혁을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개혁을 거부하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1980년대 말 사회주의권에 불어닥친 메가톤급 충격에 있다.
1982년 9월 중국 공산당 제12차 당대표대회가 폐막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김일성은 덩샤오핑과 함께 덩의 고향이자 중국 개혁개방의 발원지 중 하나인 쓰촨성을 찾았다. 한 농가의 뒤주에 알곡이 꽉 찬 것을 본 김일성은 어떻게 집집마다 이렇게 많은 쌀을 장만할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덩샤오핑은 ‘가정도급제’를 시행하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북한은 중국의 개혁개방에 깊은 관심을 보였고, 실제 중국식 농촌 개혁을 실험하기도 했다. 합영법, 합영회사소득세법, 외국인소득세법과 같은 법규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중국에서 천안문 사태가 일어나자 북한은 충격에 빠졌다. 동유럽 사태와 소련 사태가 이어지면서 북한은 개혁을 포기했다. 개혁이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라는 북한 사전 해석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 뒤 한·미·일 일각에서 북한의 개혁을 ‘북한붕괴론’과 함께 주창하자, 북한에서 개혁은 ‘체제 전복’의 부호로 각인되었다.
중국 사전에 개혁은 “낡은 제도, 낡은 사물을 개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북한 사전에 비해 ‘낡은 사물’이 첨가돼서일까, 중국에서는 무어나 다 개혁이다. 그렇지만 중국 개혁의 핵심은 역시 제도 개혁이었다. 스탈린식 사회주의 제도의 근간인 계획경제와 집단경제에 메스를 들이댄 것이다.
이 ‘혁명에 가까운 개혁’을 단행하자면 지난 ‘제도’에 대한 새로운 평가와 새로운 ‘이념’이 정립되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마오쩌둥이 내놓은 정책과 지시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화궈펑의 ‘양개범시’를 비판하고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표준”이라는 새로운 이념을 정립했을 때 가능했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새로운 이념도 과거에 대한 부정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니 어느 쪽을 보아도 북한은 이런 개혁 쪽으로 방향을 틀 이유가 없을 것이다. 북한의 변화는 ‘변혁’이란 용어가 더 적당할 것 같다.
결국 북한의 변화는 “사회주의 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최대한의 실리를 챙기는” 변혁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실제 경제이익을 어떻게 최대한 챙기는가에 변혁의 내용이 들어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운신의 공간과 폭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실리가 커질수록 어디까지가 사회주의 원칙이냐는 논쟁도 일기 마련일 터이다. 결과적으로 승패는 인민들의 적극성을 얼마나 동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농촌과 기업에서의 자율권 확대, 특구에서의 특수정책 부여, 중점 분야에 대한 유한한 자금의 집중 투자, 기존 ‘시장’ 기능의 확대 등등 북한은 ‘개혁’을 하지 않아도 ‘변혁’할 공간이 넓다.
한마디로 계획경제의 강화든 시장경제의 도입이든, 개혁이든 변혁이든 민생부터 챙기는 변화면 다 좋은 변화인 것이다.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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