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09 19:30
수정 : 2012.10.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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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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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학자들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만큼 중국과 문화적으로 가깝고 이해관계가 깊은 지역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고대 중국의 왕조 교체기마다 한반도는 진통을 겪었다. 원명(元明) 교체기에는 친원파와 친명파가 갈등을 빚으면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졌다. 명청(明淸) 교체기에도 친명파와 친청파의 갈등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났고, 그것은 병자호란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정국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근대사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당대 열강들인 러시아,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그리고 아시아 신흥제국인 일본까지 모두 한반도에 발을 들여놓았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급속히 부각되었다. 이때부터는 한반도 정국이 중국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한반도 문제로 야기된 청일전쟁은 중국이 한반도와의 전통적 관계를 지키려 했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역시 한반도에서 불을 지핀 러일전쟁으로 중국의 동북지역이 전쟁에 휩싸였다.
그 뒤의 한일합병은 사실상 일본의 중국대륙 침략의 전주곡이었다. 중국은 한반도 무대에서 퇴출당했고, 그것은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가 무너지는 신호이기도 했다. 이후 중국은 일본에 침략과 유린을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한반도와의 관계는 이제 ‘순망치한’의 관계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한국전쟁, 냉전 시기까지 이어진다. 오늘날까지 일부 학자들이 한반도 문제를 중국의 핵심이익과 연계시키는 것도 이에 기인한 것이다.
이제 무대는 21세기로 옮겨졌다. 세계화와 지역경제블록화 시대다. 싸이의 ‘말춤’이 순식간에 전세계로 퍼져나가는 시대다. 중국과 한국의 관계도 달라질 수밖에 없고 또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오늘의 양국관계를 보는 시각에는 여전히 19세기, 20세기의 시각이 다분히 깔려 있다. 이사위감(以史爲鑑·역사를 거울로 삼는다)해서일까, 많은 학자들은 한반도를 여전히 중국의 전략적 완충지역으로 인식한다. ‘이이제이’(以夷制夷)의 패턴으로 중국의 부상을 보자는 시각 또한 적지 않다. 물론 빌미는 아직도 한반도에 드리워 있는 냉전의 그림자가 제공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19세기, 20세기의 시각과 패턴으로 21세기의 중-한 관계를 정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양국은 근대사 이후 처음으로 강한 나라로서 서로 만났다. 우리 앞에 펼쳐진 동아시아 역시 달라졌다. 신흥국가로 부흥하는 인도, 동아시아의 한 축을 이루는 아세안,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며 남하하는 러시아, 거기에 아시아로 회귀하는 미국, 아시아 경제를 이끌어 온 일본이 함께하는 상황이다. 신흥국가들이 부흥하던 지난 세기의 패턴이라면 갈등과 충돌, 전쟁이 뒤따를 것이 뻔하다.
그렇지만 동아시아가 지난 세기처럼 힘과 힘의 대결로 전쟁에 휩싸일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드물다. 시대와 패턴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신흥국가들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세계화의 흐름을 탔기 때문이다. 중국과 한국 역시 시대와 국력에 걸맞은 세계 속의 중-한 관계를 구축하는 새로운 패턴을 설계해야 할 것이다.
작금의 세계질서는 신흥국가들이 부흥하는 아·태지역이 만들어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 말부터 중-한 관계가 어쩔 수 없이 ‘순망치한’의 지정학적 운명으로 ‘세계질서’의 지배를 받아왔다면, 이제는 새로운 지정학적 패턴으로 윈윈의 ‘순망치한’ 관계를 이루어 나가며, 함께 새 질서를 구축해가는 선도적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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