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3.19 19:19
수정 : 2013.03.1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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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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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이제야 겨우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한반도 주변 정세의 급박함을 생각할 때 답답한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외교 진용이 정비되고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5월 초로 결정되었다. 대선 공약으로 내건 야심적인 대북·대중 정책을 서둘러 시동해야 할 때다. 5월 말에는 한-중-일 정상회담을 서울에서 열게 된다. 이어 중국·일본·러시아 등 동북아 관계국을 향한 박 대통령의 정상외교가 어떤 형태로 추진될지가 주목된다. 한반도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능동적이고 주도적인 외교가 필요한 상황이다.
한발 먼저 출범한 일본의 아베 정권은 나름대로 발 빠른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물론 7월 참의원 선거까지는 ‘아베노믹스’를 내걸면서 국내 경제 문제에 주력하고 있다. 외교나 이념에 관련된 과제는 뒤로 미루는 ‘안전운행’이 기본 방침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외관계에서 직접적인 충돌은 회피하면서도 대중국 포위망을 시야에 둔 신냉전외교의 포석은 착실히 추진하고 있다. 총리 취임 직후 최초 방문국으로 미국이나 한국을 모색했지만 여의치 않자 아세안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중국 견제가 주된 목적인 것을 구태여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방문국은 중국과 영해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베트남, 그리고 타이·인도네시아였다. 알제리 인질사건으로 실제 발표는 무산되었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대아세안 외교 5원칙을 표방한 외교연설을 준비했다. ‘힘이 아닌 법에 의한 해양 질서’ 등 중국과 영해·영토 문제로 갈등하는 아세안과 전략적으로 연계할 의지를 명백히 밝힌 것이었다.
이런 중국 포위망을 발판으로 워싱턴을 방문해서 미-일 동맹의 ‘완전 부활’을 과시하는 것이 아베 외교의 중간 목표였다고 할 수 있다. 그 직전인 1월말 중국 쪽이 일본 자위대 함정에 공격용 레이더를 조준한 사건이 발생하자 중국과의 외교적 절충이 아니라 이를 폭로해서 중국을 압박하는 조처를 선택했다. 중-일 관계 회복보다는 미-일 정상회담의 ‘성공’에 더 중점을 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회담 직전 <워싱턴 포스트> 회견(2월21일)에서도 ‘중국위협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오바마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도 아베 총리는 대두되는 중국의 위협을 거듭 강조하면서 일본의 방위력 강화, 집단적 자위권 용인 등을 통한 미-일 동맹의 강화와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예상외로 매우 냉담했다. 공식적인 만찬도, 정상 간의 친분을 과시하는 행사도 모두 생략되었고, ‘공동성명’으로 발표된 문건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관한 세 단락만이 담긴 지극히 간소한 것이었다. 외교상 이례적인 홀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바마 정권으로서도 중-일 갈등을 증폭시키는 아베 정권의 신냉전외교와는 거리를 두고 이에 제동을 걸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은 결코 단순하지가 않다.
공약 등에 나타난 박근혜 정부의 구상은 대북·대중 정책에서 신냉전이라기보다는 탈냉전 지향성이 두드러진다. 한국의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경제뿐만 아니라 ‘북한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도 중국과의 관계 강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일 간에는 과거사와 독도문제 이외에도 동북아 지역질서 구상을 둘러싼 잠재적인 갈등이 존재한다. 쉽지 않은 과제지만 미·일·중·러를 아우르는 창조적인 외교의 도전이자 기회이기도 하다.
이종원 일본 와세다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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