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23 19:15
수정 : 2013.04.2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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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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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한반도 위기는 북한이 세계 최강 미국을 상대로 치킨게임을 벌이면서 고조돼 왔다. 북한은 ‘전쟁’이 임박했음을 알리며 한·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미국도 최신 무기를 선보이면서 위기를 격상시켰다. 모두 예의 패턴대로 게임을 치른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치킨게임은 여느 때보다 더 ‘전쟁 직전’을 방불케 했다. 과거의 위기 수준을 훨씬 넘어서야 ‘진짜’ 위기감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치킨게임에서 양자는 모두 상대방이 ‘이성적’이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을 비이성적이라고 생각하면 게임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또 상대방이 이성적이기에 마지막엔 굴복하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으면 역시 게임은 성사되기 어렵다. 결국 치킨게임은 상대가 ‘이성적’이라는 것을 믿으며 정작 자기는 ‘비이성적’ 행위를 보여주는 게임이다. ‘비이성적 행위’가 극대화되면 될수록, 위기를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고조시키면 시킬수록 목표와의 거리는 좁혀진다. 당하는 쪽이 진짜 위기라고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비이성적 행위’는 ‘이성’에 의해 좌우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은 ‘양패구상’(兩敗俱傷), 곧 공멸을 불러올 수 있다. 결국 치킨게임의 ‘비이성적 행위’는 ‘이성’에 의해 연출되는 것인 셈이다.
북한은 미국을 자기 목적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위기를 전례 없이 고조시켰을 것이다. 실제 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았을 때 한국은 대화를 제의하고 나섰고 미국도 일부 군사훈련을 취소했다. 오바마 1기 4년 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미국이다.
게임의 룰대로라면 한·미는 일단 핸들을 꺾었고 게임은 막을 내려야 할 것이다. 북한은 초기 목표를 이룬 것 같다. 그렇지만 북한은 한·미의 대화 제의를 사실상 거부하였다. 미국을 움직이게 한 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자신과 평화협정을 맺고 관계 개선에 나서길 바란다. 이는 북한이 20년간 추구해 온 목표다. 하지만 게임을 할수록 목표와 멀어지는 느낌이다.
어찌 보면 지난 20년간 북한은 이길 수 없는 게임을 치렀는지 모른다. 미국의 북한 ‘적대시 정책’은 사실 단순히 북한이 ‘미워서’가 아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적’으로서의 북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미국은 북한과의 적당한 위기가 더 필요하다. 북핵이란 위협이 없으면 미국은 다른 ‘위협’을 만들어내서라도 북한과 대립각을 세우려 할 것이다.
미국은 이번 치킨게임에서 ‘위협’을 느껴 한발 뒤로 물러선 것 같지만 이는 착각일 수 있다. 미국은 북한이 ‘이성적’으로 ‘비이성적 행위’를 한다고 판단하면 오히려 위기를 ‘전략적 기회’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을 위시한 대국들을 좌지우지한다고 믿고 싶어하지만 지금까지의 게임은 오히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일본의 군국주의화에도 빌미를 제공하면서 원하지 않던 결과가 만들어지고 있다. 북한은 원하던 핵 보유를 실현해 게임에서 이긴 것 같지만 지난 20년을 대가로 치렀다.
지피지기해야 게임에서 이길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이 ‘비핵화’를 목표로 내세우고 새로운 게임을 벌이면 그것은 미국이 원하지 않던 결과를 이루어낼 수도 있다.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선상에 올려놓으면 오히려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이젠 새 패턴으로 이기는 게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진징이 중국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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