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6.23 19:35
수정 : 2013.06.23 19:35
|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
지난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연 일련의 청문회는 미국 금융개혁 작업의 한심한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버락 오바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금융개혁법(도드-프랭크법)의 내용 가운데 하나인 증권거래위원회의 주택저당채권(MBS) 평가기관 선정 문제를 토론하는 청문회였다. 채권 평가기관을 증권거래위원회가 선정하도록 하는 것에 대한 전문가들의 견해를 듣는 자리였다.
이 조항은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해 새롭게 부각된 ‘이해상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 신용평가기관은 주택저당채권을 발행하는 투자은행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부동산 시장 상황이 좋을 때 주택저당채권을 평가하는 것은 수익성이 매우 좋은 사업이다. 은행들이 연간 수조달러 규모에 이르는 주택저당채권을 마구 발행하기 때문이다.
평가기관들은 채권의 실제 ‘품질’과 무관하게 ‘투자 가능 등급’으로 평가하려는 강한 유혹을 느낀다. 그래야 은행들로부터 일거리를 끊임없이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거리 확보’와 ‘공정한 평가’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평가기관의 애널리스트들도 이런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어떤 애널리스트들은 “물주가 발행한 채권”은 무조건 투자 등급을 줘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에 대해 불평하는 이메일을 주고받기도 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신용평가기관을 결정하는 데 은행들이 간섭할 수 없게 만들면 된다. 채권 평가 대가로 은행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등의 관행은 그대로 둬도 상관없다. 단, 신용평가기관 선정 권한은 은행들한테서 빼앗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채권 평가가 은행들에 좌우되지 않는다.
이 방법은 나를 포함한 미국의 여러 경제학자들이 주장해온 것이다. 미네소타 출신인 앨 프랭큰 상원의원이 민주·공화 양당의 지지를 받은 도드-프랭크법안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이 내용을 제안했다. 오바마 정부의 개혁 가운데 드물게 당파적인 논쟁을 피할 수 있는 조항으로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안은 지금 월가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도드-프랭크법의 다른 조항들과 함께 당장 실현돼야 하지만, 증권거래위원회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이유로 2년의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다. 월가의 대의회 로비 공세로 의회의 태도가 갑자기 바뀐 탓이다.
이런 연구는 오히려 월가가 개혁에서 이탈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종류의 연구는 월가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삼아 이뤄지기 때문이다. 월가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증권거래위원회가 논쟁으로 날이 새도록 만들 것이다. 월가의 돈을 받으면서 월가와 반대되는 견해를 주장할 전문가는 거의 없다.
월가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사실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월가와 친밀한 금융당국은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월가가 겨냥하는 것은 신용평가기관 선택 과정을 매우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증권거래위원회가 직접 선택하는 것이, 자격이 안 되는 신용평가기관이 채권 평가를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선전한다.
2008년 금융위기가 준 교훈은 더는 복잡한 금융상품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채권 매수자가 도무지 이해할수 없는 채권들이 마구 발행됐다. 매수자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채권일 경우 등급을 제대로 받을 수 없게 만든다면 은행들은 될수록 단순한 채권을 발행하려고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다.
채권 평가기관을 결정하는 문제는 금융개혁법 내용 가운데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이토록 쉽게 없었던 일로 돼버린다면, ‘대마불사’를 없애기 위한 다른 금융개혁 조처들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교적 개혁하기 쉬운 것조차 제대로 바꾸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해관계가 첨예한 것들을 개혁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증권거래위원회에서는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돈은 항상 월가 쪽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월가는 그 어느 때보다 부패했고, 서로 결탁돼 있어서 금융개혁은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게 미국의 현실이다.
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