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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08 19:18 수정 : 2013.09.08 19:18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10년 동란으로 불리는 문화대혁명 탓에 중국은 피폐화했다. 그래서 중국의 개혁개방은 흔히 맨주먹으로 이루었다는 ‘백수기가’(白手起家)로 묘사되기도 한다. 허허벌판에 선전과 같은 경제특구를 일궈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 개혁개방은 완전 백지상태에서 출발했을까?

중국의 개혁개방은 방대한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이다. 세계에 선례가 없었다. 시작에서 무엇보다 절실했던 것은 바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아는 인적 자원이었다. 어찌 보면 이 인적 자원은 개혁개방 시작의 성패를 좌우하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런데 개혁개방 초기에 중국은 아이러니하게도 자본주의를 경험한 인적 자원을 상당히 갖고 있었다.

우선 중국공산당이 정권을 잡은 1949년 8월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과 서방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고급 지식인이 무려 2500명이나 됐다. 이들 가운데는 중국의 핵무기와 인공위성을 만들어낸 공신들도 있었다. 이들은 미국과 서방 자본주의를 누구보다 잘 아는 그룹이었다. 개혁개방 초기에 이들은 국제적 인맥을 이용해 서방 나라와 연결고리 구실을 하면서 선각자로 나섰다.

또 다른 인적 자원은 중국의 근대 상공업과 민족 자본주의를 일궈낸 자본가 그룹이었다. 중국의 자본주의 상공업은 1950년대 초 국가자본주의라는 과도 형식을 거쳐 사회주의 개조를 하게 된다. 1956년에 이르러서는 무려 80여 만명의 크고 작은 ‘자본가’들이 소유권을 잃고 정기적인 이자 수입만 있는 피수매자가 되었다. 640만명의 자영업자들도 가게 문을 닫았다. 이들은 피부로 시장경제를 체득한 그룹이다. 이 자본가 그룹의 대표적 인물이 바로 ‘홍색 자본가’로 불렸던 룽이런이었다.

문화 대혁명 가운데 이 자본가들도 예외없이 타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개혁개방이 이뤄지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룽이런은 덩샤오핑의 지지로 중국 최대 투자항공모함으로 불리는 중신집단을 창설하고 직접 해외를 다니며 자본을 유치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그를 ‘중국 개혁개방의 기수’라고 불렀다. 자본가들이 개혁개방의 개척자로 거듭났던 것이다.

1950년대 중국의 상공업은 주로 동남부 연해지역에 집중됐다. 이 지역은 자본가와 자영업자들이 집중된 지역이기도 했다. 개혁개방을 하면서 가장 빠른 발전을 이룬 지역이 바로 이 연해지역이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역사는 이렇게 연속성을 이루며 발전하게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도 개혁개방 초기 중국의 50대 이상 세대는 옛 중국에서 시장경제를 경험했던 세대들이었다. 중국 개혁개방 초기의 불길은 자본주의를 경험했던 세대와 그룹들이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개혁개방 초기 조건과 지금 북한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점도 없지 않지만 다른 점이 훨씬 많다. 북한에도 1950년대 말부터 귀국한 재일동포가 근 10만명이나 된다. 일본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체험한 인적 자원이다. 북한의 시장경제 요소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친 그룹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30년 전의 중국과 달리 북한에는 자본가 그룹이 없다. 일제 식민지 시대 시장경제를 경험했던 세대도 거의 사라졌다. 서방국가에서 자본주의를 체험한 지식인 계층도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백지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시장경제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시각, 신용이 필요없다고 보는 시각,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시각들이 비일비재하지 않을까. 많은 중국 투자자들이 빈털터리로 나앉은 것도 따지고 보면 북한의 시장경제에 대한 몰인식에 원인이 있다고 하겠다.

지금 북한은 나선·금강산·개성 등 특구 외에 경제개발구를 전국으로 확장할 새로운 법을 제정했다. 투자유치가 성패를 좌우할 것이다. 그렇지만 계획경제의 그릇으로는 시장경제를 담기 어렵다. 계획경제와 병진해서라도 시장경제를 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시장경제를 아는 인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인적 자원이 많아질수록 북한은 변화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초기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 역시 북한의 변화를 바라는 모든 사람의 몫이 아닐까.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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