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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1.24 19:18 수정 : 2013.11.24 19:18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한-일 관계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 내각부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2010년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68%로 전후 최고의 기록을 나타냈다. 하지만 2년도 지나지 않은 지난해 10월 한국에 대한 호감도는 18.4%까지 급격히 떨어져 현재는 1970년대 이후 최악의 한-일 관계를 맞이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이렇게 급격히 떨어진 배경에는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전격적인 독도 방문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일본 사회에서 그때까지 독도 문제는 여론의 주요한 쟁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본인들의 반한감정의 중심사안으로 부각되어 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기 전후의 일본 상황을 고려해보면 그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다.

1990년대의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후 최악의 불경기를 맞이하였다. 2000년대에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등장하여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개혁을 했지만, 신자유주의 경제 도입으로 실질적으로는 격차사회를 만들어 버렸다. ‘잃어버린 20년’이 유행어가 되고 있을 무렵, 일본인들은 전후 처음으로 야당인 민주당으로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하지만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오키나와의 미군기지를 현외로 이전하겠다는 무모한 약속으로 스스로 사임하는 결과를 만들었으며, 시민운동을 대표한다는 간 나오토 총리는 조선학교의 무상화 배제를 인정하는 등 일본 보수의 차별 정책을 답습하여 양심적인 지지자들조차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어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는 최악의 상황에서 2011년 3월11일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라는 최악의 재앙이 불어닥친 것이다. 전후 최대의 국가 위기 속에서 우왕좌왕하며 전략도 없고 전술도 없고 솔직함도 없는 민주당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이루 표현할 수 없었다. 게다가 노다 요시히코 정권은 국민들의 강력한 반대 여론 속에서도 자민당과 연합하여 소비세 인상안 등을 가결해 국민들의 마지막 미련마저도 버리게 만들었다.

2012년 8월10일, 국회 참의원에서 소비세 인상안이 가결되는 날 오후 이 대통령의 “역사적인” 첫 독도 방문이 있었다. 일본의 보수 신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독도 방문 문제로 석간신문의 여론을 전환시켜 소비세 인상 문제를 덮어버렸다. 부패 문제로 이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측근들의 구속이 이어지자 여론 전환을 위해 독도 방문이라는 정치적 퍼포먼스를 한 것이라고 일본의 미디어는 친절한 분석도 덧붙였다.

러시아 대통령이 북방영토를 방문하고 중국이 센카쿠열도 문제로 자극하는 등 대외적인 압박에 고민하고 있던 일본의 보수세력으로서는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울고 싶은 아이의 뺨을 제대로 때려준 격이 되었다. 아베 신조를 주축으로 한 보수세력은 “일본을 다시 되찾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결국 다시 자민당으로의 정권교체에 성공하였고, 압도적인 지지 속에 총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두었다. 잃어버린 20년의 좌절과 3·11 이후 피폐해진 일본의 시민사회는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보수세력이 선동하는 내셔널리즘에 빠져들어가 버렸다.

한-일 관계는 복잡해서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우연인지 ‘짜고 치는 고스톱’인지는 검증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날을 계기로 일본의 우익들이 한류를 전복시키고 혐한류에 기반한 한국 때리기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토양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한-일 간의 가장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가장 강력한 외교 카드를 사용하면서 상대방의 국내외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무책임하고 실패한 외교이다.

이명박 정권이 박근혜 정권에 넘긴 한-일 외교의 과제는 무겁다. 일본만큼 잔인하고 비겁하게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외교 앞에서 ‘신뢰 외교’라는 추상적인 표현만으로는 일본을 설득하기 어렵다. 일본의 보수 정치가들의 발언 하나하나에 일비일희하는 코멘트 정책이나, 미국이나 서구 언론을 통해 압박을 가하려는 외압적인 방식도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 일본의 미디어와 정치가들이 왜곡하는 한-일 간의 역사적인 사실을 구체적으로 파악하여 준비된 시기에 직접 대화로 일본의 총리를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책임있는 대일 외교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영채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국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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