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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5.08 19:19 수정 : 2016.05.08 19:19



3일은 일본의 헌법기념일이었다. 지난해 안보 법제가 제정된 뒤 헌법, 특히 (일본의 교전권과 전쟁 포기를 규정한) 9조를 둘러싼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게 됐다. 그리고 올해 헌법기념일 직전에 이뤄진 신문·방송의 여론조사에선 9조 개정에 반대하는 비율이 증가했다. <아사히신문>의 조사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2013년 제2차 아베 정권 발족 직후까지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일관되게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의견을 웃돌았다. 그러나 2014년 이후 개정에 관한 의견이 역전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올봄 조사에선 개정에 대한 찬반 차이가 18%포인트 정도로 벌어져 ‘반대’ 의견이 더 많아졌다. 헌법 9조에 대해서도 “바꾸지 않는 게 좋다”는 의견이 지난해 63%에서 68%로 더 늘었다.(“바꾸는 게 좋다” 27%)

아베 정권이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헌법에 관한 국민의 지지는 얻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아베 정권이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 헌법 개정에 대한 일본 국민들의 경계감을 높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안보 법제 제정이 됐다고 해서 일본이 바로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안보 법제나 특정비밀보호법에 의해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된 것은 확실하다. 지금 일본한테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됐다는 사실이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정부가 사실을 은폐하고 국민을 속인다. 이라크 전쟁의 원인이 된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미국의) 거짓말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듯 국민들에게 거짓을 믿게 하지 않으면 전쟁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정부는 보도기관을 통제해 국민들에게 정부에 유리한 정보만 믿게 하려 한다.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 기존 헌법 아래에서도 정부는 현재 방송과 신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비판적인 캐스터들이 활동의 장을 빼앗기는 중이다. 방송 사업을 감독하는 총무상은 방송의 중립을 요구하며 위반할 시에는 전파 정지를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동시에 연예인들이 아베 총리를 둘러싸고 그의 말에 동의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당당히 방송된다. 정부에 의한 언론 통제가 상당한 효과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두번째 특징은 개인 삶의 방식에 정부가 간섭하려는 것이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국가에선 개인이 존중받지 못한다. 국민은 국책 수행을 위한 도구가 된다. 이렇게 되면 정부는 국민이 취해야 할 삶의 방식을 정의하고 그것을 실천하도록 설교하게 된다.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일본에서 ‘남존여비’의 편견을 가진 남성들이 여성에 대해 ‘빨리 결혼해라’, ‘아이를 낳아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설교하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말하는 ‘여성이 빛나는 사회’는 여성이 출산·육아·간호 등 종래 가족에게 해온 일을 하는 것과 동시에 사회에 나가 노동을 하는 것이 상정되어 있다. 1억 총활약이라는 슬로건에도 국민이 국책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세번째 특징은 지(知)의 부정이다. 정책의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지성은 전쟁을 하는 정부에 방해물이 된다. 학자의 연구 활동도 국책에 공헌하도록 재편하는 게 전쟁할 수 있는 국가의 특징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일본 국립대학에선 예산 삭감이 진행됐다. 특히 인문·사회계열에 대한 축소가 이어지고 있다. 문학·철학·역사학 등은 배워도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살아가는 국가에 대해 비판하는 능력이 사라지면, 자신이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멸의 집단만이 남겨질 뿐이다.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그러나 정치 관여라는 일본인의 역량을 비관하지 않는다. 헌법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듯, 아베 식의 개헌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지고 있다.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일본 민주정치의 존재양식을 묻는 논의가 한층 더 깊어지길 바란다.

야마구치 지로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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