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교수 19세기 말 국운이 기울고 1910년에 나라를 잃은 뒤 한국의 독립운동은 중국을 주무대로 전개되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국공내전은 한국의 독립운동도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그나마 국공 양당은 항일전쟁 중 합작하여 민족통일전선을 구축했지만, 한국의 두 진영에는 대화도 합작도 없었다. 제로섬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뿌리는 이념 대결이었다. 이념 대결은 두 진영을 미·소에 분할점령된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다. 함께 독립국가의 청사진을 그릴 협력도 노력도 별로 없었다. 그 연장선에 제로섬의 분단과 전쟁이 있었다. 한국전쟁은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는, 말 그대로의 제로섬 대결이었다. 냉전 시기 그 대결은 남북이 서로를 이기려 했던 체제 경쟁으로 이어졌다. 냉전이 종식된 뒤 북-미 간의 전략 갈등으로 불거진 북핵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는 남북의 제로섬 관계에 있다. 남한에 비해 열세에 처한 북한은 ‘남방3각’과의 대결에서 핵개발을 선택했다. 누가 뭐라 해도 북핵의 시작은 한국에 먹히지 않겠다는 제로섬 사고에 기인한 것이었다. 북한이 핵으로 추구해온 절대적 안전은 한국에는 절대적 위협이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의 대북 제재와 한·미 군사압박은 북한 체제에는 전방위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북한의 핵위협 수위는 높아갔다. 제로섬 게임의 절정인 치킨게임은 롤러코스터처럼 한반도를 전쟁의 변두리로 몰고 가곤 하였다. 연평도 사건이 그랬고 분계선 지뢰 사건이 그랬다. 총격과 포격이 오가며 제로섬 게임의 극치를 장식했다. 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내놓고 북한의 ‘폭정 종식’을 선포하였다.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로 남북의 제로섬 게임을 끝내려 작심한 것 같았다. 개성공단의 폐쇄는 남북관계의 종말을 고하는 듯했고, 북한의 핵미사일 폭죽에 미국의 최신예 폭격기와 핵항모가 종말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듯했다. 한국은 ‘참수 작전’으로, 북한은 ‘청와대 제거’로, 지지리도 길게 남북한을 괴롭혀온 제로섬 게임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남과 북의 이 제로섬 게임은 승자와 패자를 확실하게 가르기에 앞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두 죄수가 자기의 이익만 극대화하려다가 결국은 서로가 이익을 최소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제로섬 게임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 결국 상대에게 익숙해져서 서로가 제로가 된다는 설도 있다. 더 나아가면 서로가 마이너스가 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남과 북은 적어도 70년 제로섬 게임을 벌여왔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작금의 한반도는 트럼프의 출현과 한국의 혼돈으로 앞날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 와중에 남북관계가 계속 악화일로로 치달으면 한반도의 국운이 기울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남북관계는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운명, 북한의 운명 모두 남북관계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윈윈으로 가는 길이다. 제로섬 게임에서의 최대 이익은 상대가 최대한 잃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윈윈에서의 최대이익은 상대도 최대이익을 챙기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남북한에 윈윈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미국을 설득하여 북한이 수십년 그토록 최대의 안전 위협으로 여겨온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지 또는 축소하는 노력을 집요하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북한에 지는 것일까? 제로섬 게임에서 보면 지는 게임일 수 있지만, 윈윈 게임에서는 이기는 게임이 될 수 있다. 남북한의 제로섬 게임은 장장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의 검증을 거쳤고, 결과적으로 서로가 지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 붕괴’나 ‘성전통일’에 마지막 희망을 건다면, 한 세기 전의 비극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금의 한국과 북한은 모두 어렵다. 윈윈은 이제 운명적 선택이다.
칼럼 |
[세계의 창] 제로섬 게임과 죄수의 딜레마 / 진징이 |
베이징대 교수 19세기 말 국운이 기울고 1910년에 나라를 잃은 뒤 한국의 독립운동은 중국을 주무대로 전개되었다. 1920년대부터 시작된 국공내전은 한국의 독립운동도 두 진영으로 갈라놓았다. 그나마 국공 양당은 항일전쟁 중 합작하여 민족통일전선을 구축했지만, 한국의 두 진영에는 대화도 합작도 없었다. 제로섬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뿌리는 이념 대결이었다. 이념 대결은 두 진영을 미·소에 분할점령된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다. 함께 독립국가의 청사진을 그릴 협력도 노력도 별로 없었다. 그 연장선에 제로섬의 분단과 전쟁이 있었다. 한국전쟁은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는, 말 그대로의 제로섬 대결이었다. 냉전 시기 그 대결은 남북이 서로를 이기려 했던 체제 경쟁으로 이어졌다. 냉전이 종식된 뒤 북-미 간의 전략 갈등으로 불거진 북핵도, 따지고 보면 그 뿌리는 남북의 제로섬 관계에 있다. 남한에 비해 열세에 처한 북한은 ‘남방3각’과의 대결에서 핵개발을 선택했다. 누가 뭐라 해도 북핵의 시작은 한국에 먹히지 않겠다는 제로섬 사고에 기인한 것이었다. 북한이 핵으로 추구해온 절대적 안전은 한국에는 절대적 위협이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의 대북 제재와 한·미 군사압박은 북한 체제에는 전방위적인 위협으로 간주되었고, 북한의 핵위협 수위는 높아갔다. 제로섬 게임의 절정인 치킨게임은 롤러코스터처럼 한반도를 전쟁의 변두리로 몰고 가곤 하였다. 연평도 사건이 그랬고 분계선 지뢰 사건이 그랬다. 총격과 포격이 오가며 제로섬 게임의 극치를 장식했다. 그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내놓고 북한의 ‘폭정 종식’을 선포하였다. ‘북한 붕괴’에 의한 통일로 남북의 제로섬 게임을 끝내려 작심한 것 같았다. 개성공단의 폐쇄는 남북관계의 종말을 고하는 듯했고, 북한의 핵미사일 폭죽에 미국의 최신예 폭격기와 핵항모가 종말의 분위기를 한껏 돋우는 듯했다. 한국은 ‘참수 작전’으로, 북한은 ‘청와대 제거’로, 지지리도 길게 남북한을 괴롭혀온 제로섬 게임에 마침표를 찍으려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남과 북의 이 제로섬 게임은 승자와 패자를 확실하게 가르기에 앞서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죄수의 딜레마는 두 죄수가 자기의 이익만 극대화하려다가 결국은 서로가 이익을 최소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제로섬 게임이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면 결국 상대에게 익숙해져서 서로가 제로가 된다는 설도 있다. 더 나아가면 서로가 마이너스가 되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남과 북은 적어도 70년 제로섬 게임을 벌여왔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작금의 한반도는 트럼프의 출현과 한국의 혼돈으로 앞날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 와중에 남북관계가 계속 악화일로로 치달으면 한반도의 국운이 기울 수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남북관계는 이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운명, 북한의 운명 모두 남북관계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윈윈으로 가는 길이다. 제로섬 게임에서의 최대 이익은 상대가 최대한 잃는 것을 전제로 하지만, 윈윈에서의 최대이익은 상대도 최대이익을 챙기는 것을 전제로 한다. 남북한에 윈윈의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 미국을 설득하여 북한이 수십년 그토록 최대의 안전 위협으로 여겨온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지 또는 축소하는 노력을 집요하게 한다면 어떻게 될까? 북한에 지는 것일까? 제로섬 게임에서 보면 지는 게임일 수 있지만, 윈윈 게임에서는 이기는 게임이 될 수 있다. 남북한의 제로섬 게임은 장장 한 세기 가까운 시간의 검증을 거쳤고, 결과적으로 서로가 지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들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북한 붕괴’나 ‘성전통일’에 마지막 희망을 건다면, 한 세기 전의 비극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작금의 한국과 북한은 모두 어렵다. 윈윈은 이제 운명적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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