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2016년은 세계 민주정치가 수난을 당한 한 해였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이탈을 결정한 국민투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탈리아 헌법개정 국민투표 결과에 다른 마테오 렌치 정권의 붕괴, 그리고 한국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있었다. 사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민주적으로 뽑힌 정권들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구미에서 진행 중인 정치의 동요는 예전엔 사회의 주류였던 중간층이, 정치와 경제 엘리트들이 추진한 글로벌화 노선에 불만을 폭발시킨 게 원인이다.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정기적 고용이 사라지고 생활에 대한 불안이 높아진다. 그런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고립과 폐쇄를 호소하는 주장들에 달라붙게 된다. 그런 불안심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엘리트층에 대한 반발이 계절상품과 같은 지도자에 대한 지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를 파괴하는 쪽으로 이어지는 것에는 크게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그야말로 1930년대의 독일과 일본이 걸었던 파멸의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사정이 상당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최순실이 권력을 사유화해 사리사욕을 취하려 했다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국회 탄핵을 이끌었다. 서울 중심부를 수십만명의 시민이 메우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연하게 행동하는 광경은 일본에서 볼 때 경이롭기까지 했다. 굳이 말한다면 그런 한국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정의감과 정열이 부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일본에서도 2015년 8~9월 아베 정권이 추진하던 안보 법제 개정에 반대하는 12만명의 시민이 국회 앞에서 반대 집회를 진행했지만, 법 개정을 막진 못했다.) 일본에선 민주정치를 선거와 의회의 다수결이라는 제도적 틀에 한정하려는 견해가 존재한다. 선거에서 뽑힌 정부에 대해 데모를 통해 반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일본의 일부 평론가들은 한국에서 진행 중인 촛불집회 등 시민들의 직접 행동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발전 도상에 있다는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 이를테면 연금의 삭감, 카지노의 해금, 원전 재가동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반수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억지로 그런 종류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50~60%에 달하고 있다. 정책에 불만은 있지만, 더 좋은 정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현재 민의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다수 정당을 고르는 것에 한정하는 일본의 사고방식에선 이렇게 수동적이고 포기를 잘하는 시민밖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극히 안정돼 있는 아베 정권은 현대 세계에서 우등생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일본인이 포기를 잘하기 때문일 것이고, 민주정치가 정체돼 있음을 나타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주의에선 시민이 정치에 참가하는 경로가 다양하다. 선거로 뽑힌 위정자라고 해도, 정책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고, 부패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엔 시민이 행동을 일으켜 위정자를 비판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한국에선 1980년대 민주화의 경험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민의에서 벗어난 위정자를 퇴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쉬운 일이다. 그 뒤의 과제는 민의를 받아안는 유능한 책임자를 어떻게 선출해 국가의 통치를 맡길지이다. 물론 그쪽이 전자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가 된다. 동아시아에서 민주정치의 진전을 위해 갖은 고생을 거듭해온 이웃나라인 한국 시민들의 이후 대응에 주목하고 싶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시민들의 노력으로 좋은 정치를 만들어내는 모델이 같은 동아시아 국가에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는 포기가 만연된 일본에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칼럼 |
[세계의 창] 민주정치의 위기와 민중 / 야마구치 지로 |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2016년은 세계 민주정치가 수난을 당한 한 해였다.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이탈을 결정한 국민투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탈리아 헌법개정 국민투표 결과에 다른 마테오 렌치 정권의 붕괴, 그리고 한국에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있었다. 사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민주적으로 뽑힌 정권들이 불안정해지고 있다. 구미에서 진행 중인 정치의 동요는 예전엔 사회의 주류였던 중간층이, 정치와 경제 엘리트들이 추진한 글로벌화 노선에 불만을 폭발시킨 게 원인이다.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 정기적 고용이 사라지고 생활에 대한 불안이 높아진다. 그런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고립과 폐쇄를 호소하는 주장들에 달라붙게 된다. 그런 불안심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엘리트층에 대한 반발이 계절상품과 같은 지도자에 대한 지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다원적이고 관용적인 사회를 파괴하는 쪽으로 이어지는 것에는 크게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그야말로 1930년대의 독일과 일본이 걸었던 파멸의 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는 사정이 상당히 다른 것처럼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최순실이 권력을 사유화해 사리사욕을 취하려 했다는 것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국회 탄핵을 이끌었다. 서울 중심부를 수십만명의 시민이 메우고,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며 정연하게 행동하는 광경은 일본에서 볼 때 경이롭기까지 했다. 굳이 말한다면 그런 한국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정의감과 정열이 부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일본에서도 2015년 8~9월 아베 정권이 추진하던 안보 법제 개정에 반대하는 12만명의 시민이 국회 앞에서 반대 집회를 진행했지만, 법 개정을 막진 못했다.) 일본에선 민주정치를 선거와 의회의 다수결이라는 제도적 틀에 한정하려는 견해가 존재한다. 선거에서 뽑힌 정부에 대해 데모를 통해 반대 의견을 표현하는 것은 민주주의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일본의 일부 평론가들은 한국에서 진행 중인 촛불집회 등 시민들의 직접 행동에 대해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발전 도상에 있다는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또 아베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 이를테면 연금의 삭감, 카지노의 해금, 원전 재가동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과반수 국민이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억지로 그런 종류의 정책을 밀어붙이는 아베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50~60%에 달하고 있다. 정책에 불만은 있지만, 더 좋은 정부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현재 민의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다수 정당을 고르는 것에 한정하는 일본의 사고방식에선 이렇게 수동적이고 포기를 잘하는 시민밖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극히 안정돼 있는 아베 정권은 현대 세계에서 우등생으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일본인이 포기를 잘하기 때문일 것이고, 민주정치가 정체돼 있음을 나타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주의에선 시민이 정치에 참가하는 경로가 다양하다. 선거로 뽑힌 위정자라고 해도, 정책을 그르치는 경우도 있고, 부패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엔 시민이 행동을 일으켜 위정자를 비판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 한국에선 1980년대 민주화의 경험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민의에서 벗어난 위정자를 퇴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선 쉬운 일이다. 그 뒤의 과제는 민의를 받아안는 유능한 책임자를 어떻게 선출해 국가의 통치를 맡길지이다. 물론 그쪽이 전자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가 된다. 동아시아에서 민주정치의 진전을 위해 갖은 고생을 거듭해온 이웃나라인 한국 시민들의 이후 대응에 주목하고 싶다.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시민들의 노력으로 좋은 정치를 만들어내는 모델이 같은 동아시아 국가에서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이는 포기가 만연된 일본에도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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