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교수 올해 한반도는 유달리 다사다난하였다. 올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폭죽 터뜨리듯 하고 한국이 촛불정국으로 혼돈에 빠져들어갈 줄 지난해 이맘때 누구도 예측 못했다. 하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투표하는 날까지 예측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한반도에 확실성이 있는 것일까? 되돌아보면 공업혁명에 힘입어 과학만능의 관념이 서방세계를 휩쓸던 19세기, 사람들은 자연과 사회에 확실성이 있다고 믿었다. 뉴턴의 물리학을 접하면서 우주만물은 거대한 시계 구조와 같이 엄격한 규칙운동을 하기에 예측가능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20세기 양자역학과 상대론은 이 기계적 우주론을 뒤엎었다. 자연계와 인간사회는 불확실성의 혼돈 속에 있다고 정의를 내렸다. 그렇다면 무정부 상태에 있는 국제사회는 더더욱 불확실성을 양산한다 해야 하지 않을까? 영국의 군사사학자 존 키건이 “불필요한 비극”이라고 했던 1차 세계대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키건은 1차 세계대전은 단견과 탐욕, 이기심과 나약함, 열광과 격정 등 모든 요소들이 뒤엉켜 돌연히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라고 하였다. 유난히 쾌청한 날씨에 돌연 폭풍우가 쏟아졌다고 했다. 결국 국가적 행위라고 하여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 자체의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 인간의 이성적인 것이 가장 비이성적일 수 있다고 하였다. 아무리 이성적인 것이라 하여도 서로 영향을 주고 작용하면서 부딪치면 그 합력(合力)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혼돈 이론은 단순한 시스템에서 복잡한 행위가 나올 수 있고 확실한 시스템에서 불확실한 행위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불확실성이 잉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년의 한반도에는 좌충우돌하며 부딪칠 요소들이 쫙 깔려 있다. 작금의 탄핵 정국이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 한국 내의 갈등과 충돌, 마찰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불확실하다. 한반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트럼프는 아예 ‘불확실성’의 대명사다. 북한과 대화로 나올지 압박으로 나올지, 아니면 대화와 압박을 병행할지, 둘 다 통하지 않으면 군사적 타격까지 갈지 불확실하다. 북한의 대응이 불확실하기에 더더욱 불확실한 것이다. 한국의 사드 배치가 강행되면 중-한 갈등도 어디까지 튈지 불확실하다. 북한도 낙관하는 촛불 정국이 내년의 대선 국면을 어디로 몰고 갈지도 불확실하다. 이 모든 불확실성들은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엉켜 있다. 어느 한 요소가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어느 한 장기가 인체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주거나 붕괴시킬 수 있는 것과 같은 도리다. 거기에 사라예보의 총성과 같은 우연적 요소가 언제 어디에 첨가될지 누구도 모른다. 인간은 불확실성이 불안하기에 확실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예측이 가능한 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그렇지만 인간의 예측은 선천적으로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불확실성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국제관계에서의 불확실성이란 결국 인간에 의한 여러 가지 요소들의 갈등과 마찰, 충돌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다. 존 키건이 말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요소들을 화합과 융합으로 극복하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로 세계대전의 진원지 유럽이 하나로 통합되어 갈등과 충돌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한 것이 아닐까?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가오는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자면 존 키건이 말했던 단견과 탐욕, 이기심과 나약함, 열광과 격정 요소부터 극복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 위에 확실한 대전략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대전략이 없으면 끊임없이 사건에 끌려다니며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전략의 부재는 가장 큰 불확실성이라 하겠다.
칼럼 |
[세계의 창] 불확실성의 최소화와 대전략 / 진징이 |
베이징대 교수 올해 한반도는 유달리 다사다난하였다. 올해 북한이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폭죽 터뜨리듯 하고 한국이 촛불정국으로 혼돈에 빠져들어갈 줄 지난해 이맘때 누구도 예측 못했다. 하긴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투표하는 날까지 예측 못했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한반도에 확실성이 있는 것일까? 되돌아보면 공업혁명에 힘입어 과학만능의 관념이 서방세계를 휩쓸던 19세기, 사람들은 자연과 사회에 확실성이 있다고 믿었다. 뉴턴의 물리학을 접하면서 우주만물은 거대한 시계 구조와 같이 엄격한 규칙운동을 하기에 예측가능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렇지만 20세기 양자역학과 상대론은 이 기계적 우주론을 뒤엎었다. 자연계와 인간사회는 불확실성의 혼돈 속에 있다고 정의를 내렸다. 그렇다면 무정부 상태에 있는 국제사회는 더더욱 불확실성을 양산한다 해야 하지 않을까? 영국의 군사사학자 존 키건이 “불필요한 비극”이라고 했던 1차 세계대전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키건은 1차 세계대전은 단견과 탐욕, 이기심과 나약함, 열광과 격정 등 모든 요소들이 뒤엉켜 돌연히 격렬한 화학반응을 일으킨 결과라고 하였다. 유난히 쾌청한 날씨에 돌연 폭풍우가 쏟아졌다고 했다. 결국 국가적 행위라고 하여도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간 자체의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그 인간의 이성적인 것이 가장 비이성적일 수 있다고 하였다. 아무리 이성적인 것이라 하여도 서로 영향을 주고 작용하면서 부딪치면 그 합력(合力)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혼돈 이론은 단순한 시스템에서 복잡한 행위가 나올 수 있고 확실한 시스템에서 불확실한 행위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불확실성이 잉태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내년의 한반도에는 좌충우돌하며 부딪칠 요소들이 쫙 깔려 있다. 작금의 탄핵 정국이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면 한국 내의 갈등과 충돌, 마찰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불확실하다. 한반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트럼프는 아예 ‘불확실성’의 대명사다. 북한과 대화로 나올지 압박으로 나올지, 아니면 대화와 압박을 병행할지, 둘 다 통하지 않으면 군사적 타격까지 갈지 불확실하다. 북한의 대응이 불확실하기에 더더욱 불확실한 것이다. 한국의 사드 배치가 강행되면 중-한 갈등도 어디까지 튈지 불확실하다. 북한도 낙관하는 촛불 정국이 내년의 대선 국면을 어디로 몰고 갈지도 불확실하다. 이 모든 불확실성들은 분리돼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엉켜 있다. 어느 한 요소가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어느 한 장기가 인체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주거나 붕괴시킬 수 있는 것과 같은 도리다. 거기에 사라예보의 총성과 같은 우연적 요소가 언제 어디에 첨가될지 누구도 모른다. 인간은 불확실성이 불안하기에 확실성을 요구한다. 그래서 예측이 가능한 이론을 만들려고 노력해왔다. 그렇지만 인간의 예측은 선천적으로 불확실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는 불확실성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국제관계에서의 불확실성이란 결국 인간에 의한 여러 가지 요소들의 갈등과 마찰, 충돌에 의해 야기되는 것이다. 존 키건이 말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요소들을 화합과 융합으로 극복하면 어떻게 될까. 그 결과로 세계대전의 진원지 유럽이 하나로 통합되어 갈등과 충돌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한 것이 아닐까? 한반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가오는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자면 존 키건이 말했던 단견과 탐욕, 이기심과 나약함, 열광과 격정 요소부터 극복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 위에 확실한 대전략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 대전략이 없으면 끊임없이 사건에 끌려다니며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전략의 부재는 가장 큰 불확실성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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