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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7.01.08 19:09 수정 : 2017.01.08 19:25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

첩보의 세계에서, ‘미인계’는 외교관이나 대사관 직원들을 유혹하기 위해 덫을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유혹하는 사람이 여자면 ‘제비’, 남자면 ‘까마귀’라고 부른다. 소련은 냉전 시기에 미국의 중앙정보국이나 연방수사국 요원, 대사들한테 정보를 빼내기 위해 이런 특별한 기술들을 개발했다.

러시아가 최첨단 스파이 활동으로 뉴스의 한가운데에 있다. 대선 기간 민주당 전자메일 계정을 해킹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가 개입한 결정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으며, 미국의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백악관은 이미 러시아에 추가적인 제재를 부과하고, 35명의 외교관을 추방했다.

러시아가 수행한 활동들은 과거의 ‘미인계’ 방식과 비슷하다. 물론, 매혹적인 여성이 외로운 정보요원에게 추파를 던지는 식의 전통적인 책략은 아니다. 오히려, 이번 경우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까마귀’ 역할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와 ‘연애’를 하면서, 정보 이상의 많은 소득을 올렸다.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트럼프라는 우군을 만들었다. 오바마 행정부가 러시아에 보복 조처를 선언했지만, 트럼프는 자국 대통령을 지원하지 않고 되레 푸틴을 칭찬했다.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은, 나는 러시아가 지난해 11월 대선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킹 사실이 대선 전에 폭로됐어도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것으로 보지도 않는다. 트럼프는 다른 이유로 승리했고, 힐러리 클린턴은 다른 이유로 패배했다. 푸틴이 트럼프의 당선을 원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푸틴은 아마도 미국의 정치시스템에 혼란과 불화의 씨를 뿌리는 정도를 원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트럼프를 덫에 빠뜨리기 위해 사용한 ‘미인계’는, 전자메일 계정이 해킹당한 것이나 인터넷을 통해 허위정보가 퍼져나갔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푸틴은 대외관계에서 큰 이득을 얻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러시아 경제제재’를 해제할 것이고, 이는 러시아 경제를 끌어올릴 것이다.

또한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을 수용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개입에 대한 불평도 거둬들일 것이다. 트럼프는 이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거리감을 둬왔다. 또 트럼프 행정부는 ‘이슬람국가’(IS)를 공격하기 위해 러시아와 협조할 것이다. 미국은 시리아 반군에 대한 지원도 철회할 것이다.

하지만 푸틴은 더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트럼프는 아마도 그런 계획에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푸틴은 2013년 유럽-대서양 국가들이 “기독교적 가치 등 서양문명의 토대가 되는 뿌리를 거부하고 있다”고 꾸짖었다. 또한 푸틴은 이 국가들이 도덕적 원칙과 전통적 정체성을 부인하고 있다고도 했다. 대가족과 동성 혼인관계, 하느님과 사탄에 대한 믿음을 동일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푸틴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척하기’(political correctness)와 불법 이민도 맹비난했다. 그는 모든 소수자의 권리가 다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면서도, 다수의 권리에 문제제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의 모든 주제들은 이미 푸틴의 말에 들어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주제들이 유럽의 극우파 정당들에도 발견된다는 점이다.

푸틴은 보수적 가치관과 종교적 원리주의, 독재적 성향에 기초한 새로운 글로벌 동맹을 만들기를 열망하고 있다. 또한 푸틴은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 외국인 및 이슬람 혐오주의자들과 협력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는 유럽연합을 흐트러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자신의 목표를 공유하는 유럽 내 움직임을 지원해왔다.

트럼프는 이러한 그림에 딱 들어맞는다. 이번 ‘미인계’ 책략은 성적 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유혹이다. 푸틴은 트럼프에게 덫을 놨고, 트럼프는 미국을 ‘미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우리 앞에 놓인 진정한 위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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