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부산 일본 영사관에 소녀상이 설치되었다는 것에 대한 항의로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귀국시키는 강경책을 취했다. 일-한 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가운데, 양국 관계를 날카롭게 찌르고 있는 난제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써보기로 한다. 먼저 일본 정부가 취한 강경책에는 의문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돼 지도자 부재 상태가 되어 버린 한국에 대해 강경 자세를 취하는 것은 이른바 ‘섀도복싱’(상대가 없는 상황에서 주먹을 날리고 있다는 의미)과 같은 것이다. 아베 정권의 대응은 오로지 일본 국내의 우익들을 향한 것으로 한국에 강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 그렇다 해도 일한 양 국민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대결을 이어온 것에 대해 ‘종지부를 찍고 싶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베 정권이 말하는 바와 같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결착을 당사자(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0억엔을 지급했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한국 쪽이 조용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역으로 이 문제를 결착시키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한국이 이를 너그럽게 용서해주길 바란다는 기본적인 구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 간 합의가 한쪽만을 속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0억엔을 지급했기 때문에 일본 쪽이 해야 할 것을 모두 마쳤다는 주장은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아베 총리의 (12·28 합의의) 발언을 견지하고, 이것에 대해 국민들의 넓은 이해를 요구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은 일본의 책무이다. 그런데도 현재 일본에선 ‘자이니치 코리안’(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남에 두는 동포와 북에 두는 동포를 포괄하는 개념)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가 끊이지 않는다. 종군 위안부의 존재 자체가 거짓이었다고 주장하는 역사 수정주의 운동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삿포로시에선 시영 공공시설에 위안부가 없었다든지, 위안부라고 자칭하는 여성은 고액의 보수를 받고 매춘을 한 것이라는 역사 왜곡을 노리는 패널 전시가 이뤄졌다. 이런 현실을 한국 사람들이 보게 되면, 일본 정부의 사죄는 혀끝으로 한 것일 뿐이고 일본 국내에서 한국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방치되고 있다고 분노와 불만을 품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종류의 운동은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등과도 겹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힘을 써 탄압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한다. 그러나 역사 수정주의나 배외주의 운동이 현재화하고 있을 때 정부의 지도자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일본 정부는 그런 운동이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종차별적인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차별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과 같이 인간의 존엄이나 인권에 대한 관여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 일본의 정치 지도자는 외교 무대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기본적 가치관을 구미와 공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기본적 가치관을 실천을 통해 옹호하려는 신념은 결여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것은 어떤 시점을 경계로 그 뒤로는 일절 양국 국민이 문제를 망각한다거나 덮어서 감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일본에 있어 최종적인 해결이란 군국주의나 식민지주의의 죄업을 직시하고, 이를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의 상식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본 쪽의 최종적 해결 없이 한국에서 불가역적인 결착이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최종적인 해결에 이르는 길은 아쉽게도 지난 몇년 동안 역으로 매우 길고 험악한 것이 됐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화해를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마음 아파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꼭 이해해주길 바란다.
칼럼 |
[세계의 창] 앞으로의 위안부 문제 / 야마구치 지로 |
호세이대학 법학과 교수 부산 일본 영사관에 소녀상이 설치되었다는 것에 대한 항의로 일본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를 귀국시키는 강경책을 취했다. 일-한 관계가 악화되어 있는 가운데, 양국 관계를 날카롭게 찌르고 있는 난제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 써보기로 한다. 먼저 일본 정부가 취한 강경책에는 의문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돼 지도자 부재 상태가 되어 버린 한국에 대해 강경 자세를 취하는 것은 이른바 ‘섀도복싱’(상대가 없는 상황에서 주먹을 날리고 있다는 의미)과 같은 것이다. 아베 정권의 대응은 오로지 일본 국내의 우익들을 향한 것으로 한국에 강한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제스처에 불과하다. 그렇다 해도 일한 양 국민이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대결을 이어온 것에 대해 ‘종지부를 찍고 싶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베 정권이 말하는 바와 같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결착을 당사자(위안부 피해 할머니들)들이 살아 있을 동안에 이루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10억엔을 지급했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한국 쪽이 조용히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역으로 이 문제를 결착시키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일본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한국이 이를 너그럽게 용서해주길 바란다는 기본적인 구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부 간 합의가 한쪽만을 속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10억엔을 지급했기 때문에 일본 쪽이 해야 할 것을 모두 마쳤다는 주장은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얘기다.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경험하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아베 총리의 (12·28 합의의) 발언을 견지하고, 이것에 대해 국민들의 넓은 이해를 요구하는 노력을 계속하는 것은 일본의 책무이다. 그런데도 현재 일본에선 ‘자이니치 코리안’(자신의 국가 정체성을 남에 두는 동포와 북에 두는 동포를 포괄하는 개념)에 대한 헤이트 스피치가 끊이지 않는다. 종군 위안부의 존재 자체가 거짓이었다고 주장하는 역사 수정주의 운동도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삿포로시에선 시영 공공시설에 위안부가 없었다든지, 위안부라고 자칭하는 여성은 고액의 보수를 받고 매춘을 한 것이라는 역사 왜곡을 노리는 패널 전시가 이뤄졌다. 이런 현실을 한국 사람들이 보게 되면, 일본 정부의 사죄는 혀끝으로 한 것일 뿐이고 일본 국내에서 한국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방치되고 있다고 분노와 불만을 품게 되는 것도 당연하다. 이런 종류의 운동은 집회·결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 등과도 겹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가 힘을 써 탄압하는 것에 대해선 반대한다. 그러나 역사 수정주의나 배외주의 운동이 현재화하고 있을 때 정부의 지도자가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일본 정부는 그런 운동이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종차별적인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차별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과 같이 인간의 존엄이나 인권에 대한 관여가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게도 요구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 일본의 정치 지도자는 외교 무대에서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기본적 가치관을 구미와 공유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런 기본적 가치관을 실천을 통해 옹호하려는 신념은 결여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것은 어떤 시점을 경계로 그 뒤로는 일절 양국 국민이 문제를 망각한다거나 덮어서 감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일본에 있어 최종적인 해결이란 군국주의나 식민지주의의 죄업을 직시하고, 이를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세계의 상식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본 쪽의 최종적 해결 없이 한국에서 불가역적인 결착이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최종적인 해결에 이르는 길은 아쉽게도 지난 몇년 동안 역으로 매우 길고 험악한 것이 됐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화해를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한국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마음 아파하는 일본인들이 많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꼭 이해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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