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대 교수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전면 중단된 지 7년,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도 일년이 돼간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이판사판으로 치달았다. 이제 만나면 다시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를 수 있을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던 풍경이 이젠 낯설어 보인다. 남북은 이제 올 데까지 왔고 갈 데까지 간다는 태세다. 그런데 정작 한반도 대결의 장에 한국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지난 10년 한국에서 ‘같은 민족’으로서의 북한은 사라졌다. 북한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었다. 철저히 ‘악마화’되었다. 그 ‘악마’가 핵·미사일로 공포를 일으킨다. 한국은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전략무기, 한-미 동맹으로 ‘악마’와 맞선다. 한국은 작아지고 미국이 커져가는 형국이랄까. 북한은 미국과 대결을 벌인다고 한다. 그런 북한에 한국은 중국의 힘을 빌려 결정타를 가하려 했다. 역시 한국의 자력은 아니다. 여의치 않자 사드가 등장한다. 한-중은 사드 문제로 팽팽히 맞서 있다. 중국과 미국이 풀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역시 한국이 아닌 미국이 나선다. 한국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최빈국’ 북한만의 탓일까? 세계 7대 강국을 지향하던 한국이다. 남북관계가 사라지고 강대국들이 프레임을 짜는 듯한 느낌은 우연일까. 이젠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도 남북 교류와 협력이 모두 순탄치 않을 프레임이 짜이고 있다. 결국 한반도 운명을 다시 또 강대국들의 게임에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가설이지만, 지난 10년 한국이 북한에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세우고, 특구 하나만이라도 성공시켰으면 어떻게 됐을까? 북한이 도처에서 인프라를 깔고 건설 붐이 일어나고 시장경제 요소가 확장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한·미 군사훈련과 같은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며, 미국을 설득하여 북-미 관계 개선에 일조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지금처럼 손 놓고 대국들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대국이란 모두 자기들 전략 이익에 맞는 프레임을 짤 뿐이다. 자기의 전략 이익을 희생하며 한반도의 전략 이익을 챙겨줄 대국은 이 세상에 없다. 한국은 이제 자기 전략 이익으로 새로운 프레임을 짜야 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처럼 계속 한-미 동맹의 힘을 빌려 북한이 굴복 또는 붕괴할 때까지 밀어붙이며 안보를 지켜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결과는 어떨까?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둘러싸인 한반도다. 설령 북한이 붕괴된다 해도, 지금도 대국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 한국이 과연 힘의 대결을 벌이는 강대국들 손에서 한반도의 주도권을 고스란히 넘겨받을 수 있을까? 결국 한국의 가장 큰 전략 이익은 남북관계에서 생성된다. 물론 북한이 ‘악마’이기에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백개, 천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무모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그 백개, 천개의 이유를 뒷받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이라는 ‘악마’는 타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에도 사람이 산다”는 말도 용납 못하는 사회라면 무엇이 용납될까. 북한의 변화마저 용납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북한은 그동안 시장경제 요소가 확장되면서 시장이 경제의 중추 구실을 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주민들은 시장에서 생존 법칙을 터득한다. 생존 방식과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북한은 여전히 ‘수령 유일지도체제’로 변함이 없다. 바로 이 주민들의 변화와 정부의 불변이 빚는 괴리가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북한에 시장경제 요소가 확장될수록 이 괴리가 커지고, 북한도 변화에 적응하며 바뀔 수밖에 없다. 그 변화의 촉매제는 바로 문을 활짝 연 남북관계가 될 것이다. 한국은 이제 뒷감당도 못할 ‘북한 붕괴론’에 목매지 말고, 5·24 조치부터 풀어가며 북한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도 미국의 최신예 폭격기나 봉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주도의 남북관계에 있다.
칼럼 |
[세계의 창] 한국의 전략 이익과 남북관계 / 진징이 |
베이징대 교수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전면 중단된 지 7년,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도 일년이 돼간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이판사판으로 치달았다. 이제 만나면 다시 손을 잡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를 수 있을까?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던 풍경이 이젠 낯설어 보인다. 남북은 이제 올 데까지 왔고 갈 데까지 간다는 태세다. 그런데 정작 한반도 대결의 장에 한국은 잘 보이지 않는다. 왜일까? 지난 10년 한국에서 ‘같은 민족’으로서의 북한은 사라졌다. 북한은 없어져야 할 대상이었다. 철저히 ‘악마화’되었다. 그 ‘악마’가 핵·미사일로 공포를 일으킨다. 한국은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전략무기, 한-미 동맹으로 ‘악마’와 맞선다. 한국은 작아지고 미국이 커져가는 형국이랄까. 북한은 미국과 대결을 벌인다고 한다. 그런 북한에 한국은 중국의 힘을 빌려 결정타를 가하려 했다. 역시 한국의 자력은 아니다. 여의치 않자 사드가 등장한다. 한-중은 사드 문제로 팽팽히 맞서 있다. 중국과 미국이 풀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역시 한국이 아닌 미국이 나선다. 한국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최빈국’ 북한만의 탓일까? 세계 7대 강국을 지향하던 한국이다. 남북관계가 사라지고 강대국들이 프레임을 짜는 듯한 느낌은 우연일까. 이젠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도 남북 교류와 협력이 모두 순탄치 않을 프레임이 짜이고 있다. 결국 한반도 운명을 다시 또 강대국들의 게임에 맡겨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가설이지만, 지난 10년 한국이 북한에 제2, 제3의 개성공단을 세우고, 특구 하나만이라도 성공시켰으면 어떻게 됐을까? 북한이 도처에서 인프라를 깔고 건설 붐이 일어나고 시장경제 요소가 확장됐으면 어떻게 됐을까? 한·미 군사훈련과 같은 북한의 안보 우려를 해소하며, 미국을 설득하여 북-미 관계 개선에 일조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지금처럼 손 놓고 대국들만 바라보는 형국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강대국이란 모두 자기들 전략 이익에 맞는 프레임을 짤 뿐이다. 자기의 전략 이익을 희생하며 한반도의 전략 이익을 챙겨줄 대국은 이 세상에 없다. 한국은 이제 자기 전략 이익으로 새로운 프레임을 짜야 하지 않을까? 물론 지금처럼 계속 한-미 동맹의 힘을 빌려 북한이 굴복 또는 붕괴할 때까지 밀어붙이며 안보를 지켜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결과는 어떨까?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에 둘러싸인 한반도다. 설령 북한이 붕괴된다 해도, 지금도 대국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 한국이 과연 힘의 대결을 벌이는 강대국들 손에서 한반도의 주도권을 고스란히 넘겨받을 수 있을까? 결국 한국의 가장 큰 전략 이익은 남북관계에서 생성된다. 물론 북한이 ‘악마’이기에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백개, 천개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무모한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그 백개, 천개의 이유를 뒷받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북한이라는 ‘악마’는 타의에 의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에도 사람이 산다”는 말도 용납 못하는 사회라면 무엇이 용납될까. 북한의 변화마저 용납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북한은 그동안 시장경제 요소가 확장되면서 시장이 경제의 중추 구실을 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주민들은 시장에서 생존 법칙을 터득한다. 생존 방식과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북한은 여전히 ‘수령 유일지도체제’로 변함이 없다. 바로 이 주민들의 변화와 정부의 불변이 빚는 괴리가 북한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북한에 시장경제 요소가 확장될수록 이 괴리가 커지고, 북한도 변화에 적응하며 바뀔 수밖에 없다. 그 변화의 촉매제는 바로 문을 활짝 연 남북관계가 될 것이다. 한국은 이제 뒷감당도 못할 ‘북한 붕괴론’에 목매지 말고, 5·24 조치부터 풀어가며 북한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도 미국의 최신예 폭격기나 봉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 주도의 남북관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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