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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2 19:09 수정 : 2014.12.13 10:07

일본드라마 <대공항 201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대공항 2013>

며칠째 뜨겁게 회자 중인 대한항공 후진 파문은 생각할수록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땅콩 리턴’이라는 명명에서부터 연일 쏟아지는 다양한 패러디, 심지어 논란의 시초인 땅콩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보도까지 듣노라면, 상식과 개연성을 넘어선 권력은 분노를 넘어 환멸과 냉소의 웃음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 와중에 머릿속에 떠오른 드라마가 <대공항 2013>이라는 작품이었다. 도쿄 하네다공항을 향하던 비행기가 기상악화로 인해 다른 공항에 잠시 착륙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땅콩 리턴’ 사건과 비교해볼 때, 드라마에는 땅콩을 종지에 담아 오지 않았다고 격노하는 고용주도 없고, 장르 역시 환멸 어린 블랙코미디가 아니라 가볍게 볼 수 있는 진짜 희극이지만, 웃음 속에서 환기되는 것이 승무원의 고된 노동이라는 점만큼은 유사하다.

나가노현에 위치한 마쓰모토공항은 하루에 고작해야 두 차례 정도의 비행기가 오갈 뿐인 작은 공항이다. 지상승무원 오코우치(다케유치 유코)는 하네다공항에서도 근무했던 경험과 연륜을 살려 비상상황에 대처하려 애쓰나, 다노쿠라 가족이라는 초강적 승객을 만나 골치 아픈 상황을 맞게 된다. 할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도쿄로 돌아가는 중이던 이 가족은 하나같이 엉뚱하고 수상쩍다. 자꾸만 밀폐된 방을 요구하는 아버지(가가와 데루유키)부터 정체불명 꽃미남(오다기리 조)의 눈길을 거부하지 않는 어머니(간노 미스즈)까지, 가족의 비밀이 오코우치 앞에 하나하나 드러나면서 그녀의 머리는 점점 더 아파온다.

내용만 봐도 각본과 연출을 맡은 미타니 고키의 특징이 그대로 드러난 코미디다. 미타니 고키는 대표작인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매직 아워> 등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특정 공간에서 다양한 인물들이 얽히고설키는 예측불가 군상코미디에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작가다. 이 작품에서도 언제 다시 좋아질지 알 수 없는 기상 상황 속에서, 주변에 편의시설도 거의 없는 좁은 공항은 인물들의 비밀스러운 사연이 맞부딪히며 또 다른 전개를 불러오는 연쇄소동극의 더할 나위 없는 배경이 된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미타니 고키는 여기에 극의 모든 내용을 편집 없이 원 컷으로 담아내는 ‘원 테이크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 작품을 가장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단순히 고난도의 촬영 기법을 도입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형식이 승무원 노동의 고단함을 의미심장하게 드러내고 있어서다. 오코우치가 가족끼리도 모르는 다노쿠라 일가의 비밀을 다 알게 되는 것은 그녀가 이들을 빠짐없이 보살펴야 하는 승무원이기 때문이며, 그녀의 뒤를 쉬지 않고 따라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은연중 그녀의 피로를 두드러지게 한다.

드라마의 초점이 소동극에 있음에도 승무원의 고달픔이 환기되는 이유다. ‘땅콩 리턴’ 사건에서도 초점은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폭력적이고 비상식적인 권력 행위와 처벌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사실 더 두드러져야 할 것은 승무원들의 노동 현실이 아닐까.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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