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투게더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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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투게더니스>
30대 후반의 부부 브렛(마크 두플라스)과 미셸(멜라니 린스키)은 권태기다. 브렛은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 때문에 욕구 불만에 시달리고 미셸은 원칙대로만 사는 남편이 지루하다. 어느 날, 이 집에 객식구 두명이 가세한다. 브렛의 친구 앨릭스(스티브 지시스)와 미셸의 언니 티나(어맨다 피트)가 그 주인공. 오디션에서 번번이 낙방하는 단역 배우 앨릭스는 셋집에서 쫓겨났고, 안정된 관계를 꿈꿨던 남자친구에게 비참하게 차인 티나는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에이치비오>(HBO)의 새 시트콤 <투게더니스>(사진)는 이렇게 성인 남녀 네명의 미묘한 동거로 시작된다. 한 지붕 아래 위기의 부부와 또 다른 위기의 남녀라니, 어떤 치명적 사건이 벌어져도 놀랍지 않을 조합이다. 수위 묘사가 자유로운 <에이치비오>의 작품이니 더 그럴 법도 하다. 그런데 내용은 예상과 사뭇 다르게 흘러간다. 극중 사건·사고들은 평범하고 예사롭기까지 하다. 포르노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푹 빠진 미셸을 목격한 브렛의 서운함이 식사 한번에 사라지고,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한 티나의 복수심이 그의 집 앞에 잔뜩 널어놓은 휴지처럼 금세 풀어지듯 귀엽고 소소한 수준이다. 그 사건들은 브렛이 아들의 기저귀를 갈고 미셸이 소파를 치우는 일상적인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강도로 묘사된다.
제일 대표적인 사례가 2회에 등장한 미셸과 브렛의 침실 에피소드다.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 고민하던 미셸은 ‘매번 똑같은 잠자리’와는 다른 시도를 해보기로 마음먹고 수갑, 자물쇠 등의 도구를 준비해 남편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따라잡기’는 급소를 잘못 맞은 브렛의 비명으로 끝이 나고 만다. 인물들의 일탈은 그렇게 일상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로 쉽게 돌아온다. 허무한 결말에 웃음이 터지다가도 이내 그 단순한 반복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는 진리가 뒤따라온다.
그 진리를 깨닫고 나면 이 작품의 모든 소소한 순간들이 마냥 사랑스러워진다. 이를테면 자신의 삶은 불운하다고 한탄하며 대체 언제 이 집에서 나갈 거냐고 한탄하는 티나에게 앨릭스가 천연덕스럽게 대꾸하는 이런 순간이다. “룸메이트가 생겼잖아요. 많은 걸 함께 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얘기들을 공유할 수도 있고.” ‘심지어 이런 것도 나눌 수 있다’면서 쿠키를 내미는 앨릭스를 그 순간만큼은 사랑하지 않을 도리란 없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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