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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2.06 19:24 수정 : 2015.10.26 17:51

프랑스 드라마 <유대인 추기경>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프랑스 드라마 <유대인 추기경>

지난 1월27일,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을 맞아 세계 각지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최근 들어 다시 기승을 부리는 인종주의나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등의 현실을 생각할 때 아우슈비츠는 이제 한 민족의 비극을 넘어 모든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분파주의적 갈등의 비극에 대한 상징으로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2013년 제작된 프랑스 드라마 <유대인 추기경>(사진)은 이러한 갈등을 압축한 정치적 텍스트로 손색없다. 유대인 출신으로 교황 후보로까지 거론될 만큼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장마리 뤼스티제 추기경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1926년, 폴란드계 이민자였던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뤼스티제 추기경은 14살 때 가톨릭교인으로 세례를 받았다. 2년 뒤에는 식구들의 생계를 위해 따로 파리에 떨어져 있던 모친이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났고 홀로 남은 아버지와는 개종 문제로 평생토록 갈등했다.

드라마는 1979년, 장마리 뤼스티제(로랑 뤼카)가 오를레앙 주교로 임명받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례적인 일에 논란부터 벌어진다. 과격한 일부 사제들은 그의 담당 교회까지 찾아와 “이단”이라고 욕설을 퍼붓고, 유대인 사회에서는 ‘개종한 유대인에 대한 표창’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이처럼 드라마는 이것이 뤼스티제의 생애에 초점을 맞춘 입지전적 전기가 아니라, 그의 이중적 정체성에 가로놓인 종교적, 인종적 갈등에 대한 이야기임을 분명히 한다.

실제로 1979년은 아우슈비츠가 유대인 종족 학살의 상징으로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상징적인 해였다. 당시 뤼스티제를 주교로 임명한 요한 바오로 2세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456년 만의 비이탈리아 출신 교황이자, 최초로 로마의 유대 교회를 방문한 기념비적 인물이기도 했다. 교회 바깥으로는 프랑스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절대적 진리와 권위를 거부하는 포스트구조주의 사조가 신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던 때였다.

드라마는 이런 역사적 변화의 맥락을 배경에 깔고 ‘이방인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한 교황과 뤼스티제의 끈끈한 유대감을 통해 모든 반목과 갈등의 시대를 넘어서는 화해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이야기의 실질적 결말이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89년의 시점으로 마무리되는 까닭도 그래서다. 전반부까지는 오를레앙 주교, 파리 대주교를 거쳐 추기경에까지 오르는 외적 성공기에 집중하다가, 그가 아우슈비츠를 방문하게 된 중반부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유대인과 가톨릭신자 정체성 사이에서의 내적 고민으로 분위기를 바꾸며 한 ‘유대인 추기경’의 생애가 지닌 사회적 의미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구성이 인상적이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드라마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실제 뤼스티제 추기경은 2005년 아우슈비츠 해방 60주년 기념 행사에 교황을 대신하여 참석해 화합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당시 아우슈비츠는 “과거에 끔찍한 범죄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잘못된 행동이 재연될 위험이 여전하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며 그 비극의 의미를 설명한 그의 연설은 지금 더욱 큰 울림을 전한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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