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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06 18:44 수정 : 2015.10.26 17:49

타이드라마 <호르몬>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타이드라마 <호르몬>

얼마 전 <제이티비시>(JTBC)의 십대 학원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에 등장한 키스신이 논란 대상이 됐다. 애정신의 두 주인공이 동성이었기 때문이다. 보수단체에서는 15세 이상 관람가 드라마에서 동성애 묘사가 웬말이냐며 비난을 쏟아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도 내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또 다른 시청자들은 막장드라마는 괜찮고 동성애 코드는 문제가 되느냐며 이의를 제기했고, 급기야는 <아에프페>(AFP) 통신,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까지 보도됐다.

이 논란을 지켜보며 떠오른 작품이 타이의 청소년드라마 <호르몬>(Hormones)이다. 2013년 케이블채널 원에서 처음 방영될 당시, 타이 십대들의 현주소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 드라마다. 학원 폭력, 왕따, 사제 간의 대립, 성적 고민 등 청소년드라마의 기본적인 갈등 요소는 물론이고, 마약, 섹스, 임신도 중요한 소재로 다뤄졌다. 동성애도 빠지지 않았다. 동성 키스신을 넘어 베드신까지 등장한다. 파격적인 수위 논란에 타이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금지 처분을 시도했고 이것이 다시 시청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을 정도로 최고의 문제작이었다.

첫 회부터 충격적인 장면들의 연속이다. 개학식에서 단정한 교복 차림의 학생들이 국가를 부르는 모습으로 무난한 도입부를 여는가 싶더니, 곧이어 교실 안에 숨어 담배를 피우는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등장하고, 조금 뒤에는 화장실 한 칸에서 성관계를 마치고 태연하게 빠져나오는 남학생과 여학생의 모습이 지나간다. 국내에서라면 보수단체의 방송 중단 촉구 시위가 벌어지기도 전에 방송 자체가 불가능했을 장면들이다.

하지만 <호르몬>의 이러한 묘사는 단순히 선정적인 장면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볼거리라기보다 청소년 임신율, 낙태율의 증가가 사회문제가 될 만큼 심각한 타이 청소년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반영한 결과다. 청소년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거칠고 폭력적이며 어두운 면을 있는 그대로 표현했기에 기성세대로부터는 불편함을, 십대들에게서는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와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충격 효과를 걷어내고 나면 기성세대의 지배적 질서에 마냥 순응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려는 청소년 장르 특유의 문제의식이 빛을 발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결같은 두발규제, 교복 착용 등의 억압적 규율에 대해 “교칙은 교칙”이라는 말만 강조하는 교사들의 영혼 없는 가르침과 혼란 속에서도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십대들의 고민과 성장통과 고동치는 욕망이 이 작품엔 살아 있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우리나라 또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십대 자살률이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청소년 문제가 심각한 나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실을 담아낼 청소년드라마 장르 자체가 희귀해진 상황이며, 어쩌다 등장한 작품이라도 <선암여고 탐정단>처럼 엄격한 검열을 겪어야 한다. 그래서 더 <호르몬> 같은 문제작의 출현이 기다려진다.

김선영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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