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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4.24 19:11 수정 : 2015.10.26 17:43

미국 드라마 <그로잉 업 피셔>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그로잉 업 피셔>

미국 엔비시(NBC) 드라마 <그로잉 업 피셔>는 평범한 가족의 일상을 잔잔한 유머로 담아낸 코미디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11살 소년 헨리 피셔(엘리 베이커)의 부모가 막 이혼했다는 소식으로 시작되지만, 그렇다고 이 가족을 ‘평범하지 않게’ 볼 이유는 없다. 이혼 소식 뒤에는 아빠 멜 피셔(제이케이 시먼스)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것도 밝혀진다. 마찬가지다. 남들과 조금 다른 환경일 뿐, 그 사실이 피셔 가족의 ‘평범함’에 장애가 되지는 않는다.

<그로잉 업 피셔>의 독특한 지점이 여기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과거의 인기 드라마 <케빈은 열두살>을 연상시킨다. 꼭 집어 “11.5살”임을 강조하는 헨리의 회고조 내레이션이나 가족의 성장사를 홈비디오처럼 구성한 오프닝 타이틀이 특히 그렇다. <케빈은 열두살>이 1970년대 미국의 전형적인 가정을 대표한 드라마임을 생각할 때, <그로잉 업 피셔>가 이 의도적인 참고와 평범한 스타일 연출을 통해 강조하는 주제는 명백하다. 이혼, 장애인 가정도 그저 ‘보통의 가족’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피셔 가족의 일상은 이혼 전이나 뒤나 크게 다를 바 없이 전개된다. 어린 시절 경험한 부모의 이혼이나 장애가 트라우마로 연결되는 흔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부터 신선하다. 부모의 이혼보다는, 귀여운 개 엘비스가 새 식구가 되었다는 것이 더 특별한 에피소드로 그려질 정도다. 물론 여기에도 이유가 있다. 멜은 그동안 아예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숨기고 시력이 조금 안 좋을 뿐이라고 말해왔다. 사실이 알려진 순간 그를 이전과 다르게 대할 시선이 싫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안내견 엘비스와의 동행은 멜의 장애를 가시화하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헨리는 이를 두고 아빠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멜의 가치관이 바뀌는 각성 스토리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천연덕스러운 농담 소재로 삼을 만큼 늘 당당한 캐릭터였다.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는 가족들 옆에서 해맑게 웃으며 “난 안 보여!”를 외치는 그의 캐릭터는 장애인을 연민의 대상으로 그리는 관습적 시선을 경쾌하게 전복한다. 드라마의 이러한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주제곡 ‘언더 프레셔’일 것이다. 어둡고 사회적인 가사를 밝은 멜로디에 담아낸 퀸의 명곡처럼 이 작품 역시 사회적 주제를 명랑 홈드라마에 담아내고 있다. 영화 <위플래쉬>로 오스카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제이케이 시먼스의 덤덤해서 더 유쾌한 연기도 캐릭터의 매력에 한몫한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국내에서는 4월20일이 장애인의 날이었다. 최근 이날은 ‘하루를 지정해 시혜와 동정의 기념적인 행사를 벌이는 날’로서의 의미보다 모든 시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인권을 위해 적극적으로 차별과 맞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자주 불리고 있다. 장애를 소재로 한 드라마 자체도 드물지만 막상 그려내더라도 역경 극복 스토리 안에 머물곤 하는 이 땅에도, 차별적 시선에 통쾌하게 맞서는 <그로잉 업 피셔>와 같은 작품들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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