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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5.15 18:57 수정 : 2015.10.26 17:41

미국드라마 <지아>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지아>

2009년, 앤절리나 졸리의 과거 출연작이 무삭제 완전판으로 다시 제작된다는 소식이 화제가 됐다. 이 소식을 전하는 기사들은 대부분 ‘앤절리나 졸리의 전라’, ‘레즈비언 베드신’ 등의 자극적인 제목을 내세웠다. 작품은 1998년 티브이 영화 형식으로 방영된 <지아>. 수많은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졸리의 열연과 명품 채널 에이치비오(HBO)의 작품다운 완성도로 호평받은 수작이다. 당시 여기에 선정적인 딱지를 붙여 관심을 유도한 연예 기사들의 태도는 <지아>에서 비판하는 상품의 세계와도 맞닿아 있어 씁쓸하다.

<지아>는 1970년대 슈퍼모델 일세대로 불리는 지아 커란지의 실화를 토대로 한 작품이다. “키가 크고 마른 금발”의 여성 모델들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중성적이고 거칠기까지 한 지아의 독보적 매력은 단번에 뉴욕의 패션 관계자들을 사로잡았고 그녀는 빠른 속도로 톱모델을 넘어 스타가 됐다. 하지만 그녀의 전성기 역시 너무도 빨리 저물었고 지아는 끝내 약물중독과 에이치아이브이(HIV) 감염으로 스물여섯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만다.

작품은 지아의 비극의 원인을 여성이 상품으로 소비되는 쇼비즈니스의 상업적 세계와 누가 뭐라든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가려던 여성 주체의 대립으로 묘사한다. 지아에 대한 수많은 이들의 인터뷰가 교차하는 도입부에서 “다른 모델들에게는 포즈를 정해줬지만 지아는 그걸 만들어냈다”는 한 패션 관계자의 증언은 결코 누구에게도 규정될 수 없고, 전형적으로 재현되지도 않는, 그래서 성차별적 세상과 불화한 그녀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이러한 지아의 정체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또 하나의 특징은 그녀가 레즈비언이라는 점이었다. 미키 루크의 공식적인 첫 연인으로도 알려진 지아는 흔히 양성애자로 회자되나 드라마는 동성애에 더 초점을 맞춘다. 어린 시절 친구처럼 가까웠던 엄마가 아빠와의 갈등으로 집을 떠난 기억이 트라우마로 각인된 지아에게는 소속사 대표인 빌헬미나 쿠퍼(페이 더너웨이), 메이크업 아티스트 린다(엘리자베스 미첼) 등과 맺는 자매애적 관계가 더 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표현된다. 남성적 시선에 지배당하지 않고 모든 관계에서 자기주도적인 지아에게 어울리는 사랑 방식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작품 속에서 지아의 비극적 죽음은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지만 지난해 에이치비오에서 방영된 <노멀 하트>의 시대적 배경과도 겹쳐진다. <노멀 하트>는 에이즈에 ‘동성애에 대한 신의 형벌’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수많은 죽음을 방관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 이때 병으로 사망한 게이들은 의사들이 사망진단서마저 거부해 몰래 화장되곤 했다. 1986년 죽음을 맞은 지아 역시 장의사도 없이 쓸쓸한 장례를 치러야만 했다. 그녀의 죽음은 몇 년 후에야 겨우 알려졌다고 전해진다.

방영된 지 어느덧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작품이지만 여전히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지배적인 시대에 ‘졸리의 전라’가 아니라 선구적인 주제의식으로 재발견될 만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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