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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05 18:55 수정 : 2015.10.26 17:38

미국 드라마 ‘더 라스트 쉽’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더 라스트 쉽’

중동에서 괴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된다. 감염자를 이틀 내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엄청난 파괴력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에서 파견된 레이철 스콧 박사(로나 미트라)는 바이러스의 원형 샘플을 얻고자 북극행을 결심한다. 때마침 북극에서 무기 테스트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해군 전함 네이선 제임스 호가 그녀를 동승시킨다. 넉 달 뒤, 모든 테스트를 완료하고 본국으로 귀환하려는 함장 톰 챈들러 중령(에릭 데인)에게 스콧 박사는 그의 진짜 임무가 따로 있음을 밝힌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불러온 참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더 라스트 쉽>은 출항한 지 이십여분 만에 더 충격적인 진실을 털어놓는다. 네이선 제임스 호가 비밀임무 수행을 위해 모든 통신을 차단한 넉 달 동안, 바깥에서는 바이러스가 걷잡을 수 없이 퍼졌고 이미 인류의 80%가 숨졌다는 것이다. 무기 테스트도 실은 스콧의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백악관이 직접 계획한 위장 임무였다. 그사이 대통령과 부통령까지 사망했고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는 현재 무정부 상황이다.

지난해 미국 케이블채널 티엔티(TNT)에서 화제 속에 방영된 <더 라스트 쉽>은 메르스 사태로 불안감에 휩싸여 있는 국내에서 지금 더 공감이 가는 드라마다. 감염 재난 서사가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거의 다 묘사하고 있는데다, 무엇보다 혼돈과 절망의 시대를 통과하는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블록버스터의 대명사 마이클 베이가 제작한 드라마답게 티브이에서 보기 힘든 화려한 스케일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으나, 정작 이 거대한 배를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은 톰 챈들러가 선보이는 리더로서의 눈부신 활약에 있다.

갑갑한 배 안에서 가족의 목소리도 듣지 못하고 수개월을 보낸 뒤 드디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안도의 순간, 그토록 그리워했던 가족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전염병으로 죽어갔다는 것부터가 이미 극한의 비극이다. 더군다나 그 정도로 완벽을 기한 임무가 알고 보니 거짓이었으며, 이제는 그것을 해명해 줄 정부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군인인 그들에게 허무와 절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흔히 영웅은 이런 재난 상황에서 탄생하기 마련이다. 챈들러 역시 연료와 식량 고갈, 엔진 화재, 백신을 탐내는 무리와의 전투, 불안에 휩싸인 선원들의 분열 등 매회 급변하는 조건 속에서도 뛰어난 지략과 카리스마로 난관을 돌파해가는 영웅적 리더로 그려진다.

김선영 영화평론가
하지만 그보다 빛나는 리더십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챈들러는 권위적 명령이 아닌 합리적 설득을 통해 공동체의 동의와 연대를 이끌어내고 막연한 희망 대신 현실적 대안을 제시하며 한걸음도 딛기 힘든 이들의 용기를 북돋운다.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돕는다’는 말은 그러한 최선 속에서나 힘을 발하는 것이다. 러시아와의 싸움으로 재연되는 냉전 구도, 중동에 대한 부정적 묘사, 미국식 애국주의 등 단점도 많은 작품이나, ‘생존’이 최대의 화두가 되는 재난 시대에 더욱 중요한 리더의 윤리와 공동체의 가치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지금 더 회자될 만하다.

김선영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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