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미스터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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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미스터 로봇>
국가정보원 해킹 의혹 사건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이 모든 사태의 시작점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7월5일, 이탈리아의 아이티 기업 ‘해킹팀’이 누군가에 의해 도리어 해킹을 당하면서 그동안의 거래내역을 비롯한 내부 자료가 유출돼 세상에 알려졌다. 시민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신기술이 된 해킹 프로그램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사건인 동시에 만약 역해킹이 없었다면 아무도 모르게 은폐될 진실이었다는 점에서 해킹의 위력을 새삼 환기시키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찍이 에드워드 스노든에 의해 폭로된 국제적 불법감청 스캔들의 주역이자 해커의 종주국인 미국에서는 공교롭게도 천재 해커의 이야기를 다룬 <미스터 로봇>이라는 드라마 한편이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다. 낮에는 대기업의 사이버 보안 기술자, 밤에는 ‘자경단 해커’로 이중생활을 하고 있는 프로그래머 엘리엇(라미 말레크)이 주인공이다. 사회적 불안장애를 앓는 엘리엇은 대인관계를 기피하지만 남몰래 비범한 해킹 기술을 이용해 아동포르노 불법 유통업자, 데이트 사기범 등 부도덕한 인물들의 가면을 벗기고 있다. 멀쩡한 얼굴과 직업으로 법망을 피해 정상인 척 살아가는 인물들을 해킹으로 응징하는 엘리엇의 이야기는 정보화시대의 슈퍼히어로물을 보는 듯하다.
그러나 드라마가 천재 해커의 전형적 무용담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흥미로워지는 것은 엘리엇에게 지하해커집단의 리더인 미스터 로봇(크리스천 슬레이터)이 접근하면서부터다. 그는 평소에 엘리엇이 지닌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자극하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전세계 소비자신용산업의 70% 이상을 장악중인 독점 대기업의 서버를 포맷해 모든 이들의 대출 기록을 삭제하자는 내용이었다. 그의 말대로 “역사적으로 가장 큰 부의 재분배 프로젝트”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말하자면 정보화시대의 대혁명 서사로 흘러간다.
드라마는 초반부터 엘리엇의 정신질환과 마약 사용으로 인한 환각 증상을 언급하며 미스터 로봇이 그의 또다른 자아일 가능성을 암시하면서도, 정보자본주의시대에 대한 냉철한 현실인식으로 혁명 서사를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돈은 금본위제가 폐지된 이래 그 실체가 사라지고 소프트웨어로 세상의 운영체제가 되었다’거나, 악의 축으로 등장하는 세계 최고의 대기업 ‘이 코퍼레이션’의 실체가 “사람들을 재프로그래밍하고 길들여 종속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장면처럼 우리 시대 자본주의를 향한 해커식의 명쾌한 해석이 곳곳에 돋보인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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