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5.10.16 20:37 수정 : 2015.10.26 17:27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영국 수상관저에 기괴한 영상 하나가 도착해 비상이 걸린다. 영국 왕실에서 국민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수산나 공주(리디아 윌슨)의 납치 영상이었다. 납치범은 수상 마이클 캘로(로리 키니어)에게 공주를 풀어주는 대가로 엽기적인 조건을 내세운다. 수상이 돼지와 성관계하는 모습을 영국 전역의 모든 방송사를 통해 생방송하라는 요구였다. 정부는 이 전대미문의 테러 소식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언론을 통제하지만 영상과 관련 소식은 곧 유튜브와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퍼진다.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 첫번째 에피소드의 충격적인 도입부다. 공포로 울부짖는 수산나 공주의 모습을 비추는 첫 장면부터 이미 납치, 살인 등의 테러가 공개적으로 생중계되는 시대를 연상시키며 소름돋는 기시감을 전해준다. 실제로, 당일 오후 4시까지 조건을 이행하라며 수상을 계속해서 압박하는 납치범의 시한부 요구와 수상관저의 긴박한 대처와 이를 전하는 언론의 보도까지, 드라마 전체가 의도적으로 테러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찰하는 듯한 구성을 띠고 있다.

그리고 수상의 선택을 지켜보는 대중들의 태도가 뒤로 갈수록 한 편의 희귀하고 흥미진진한 쇼를 즐기는 듯한 모습으로 변화하는 데에 이르면 이 테러가 목표로 하는 대상은 단지 수상이 아니라 시청자 전체임을 깨닫게 된다. 컴퓨터나 티브이, 휴대폰 등의 액정 화면이 꺼지는 순간 검은 화면에 사용자의 얼굴이 되비치는 풍경을 뜻하는 ‘블랙 미러’라는 제목은 거기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이 옴니버스 형식의 시리즈는 전 에피소드를 통해서 일관되게 미디어 지배가 전면화된 시대의 음울한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더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은 두번째 에피소드다. 모든 사람들이 미디어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회, 전면이 모니터 화면으로 이뤄진 공간 안에서는 하루 종일 각종 쇼와 광고가 흘러나온다. 쇼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돌려 전기를 만들어내야 하고, 미디어에 중독된 사람들은 쓰러지기 직전까지 페달을 밟는다. 그들은 옆에 있는 사람을 두고도 비싼 돈을 지불해 대화 기능이 탑재된 스크린을 구매하고 모니터 바깥 타인의 얼굴이 잠시 화면을 가릴 때는 불같이 분노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이 에피소드가 겨냥하는 것은 미디어에 의해 획일화된 세계의 공포다. 미디어가 선사하는 쾌감에 홀린 사람들은 영원토록 그 안에 머물고 싶다는 접속의 욕망 외에는 모든 감각과 사고 능력을 상실한다. 그들은 미디어가 매끈하고 아름답게 가공한 가상세계를 더 친근하고 생생한 ‘실재’라고 느낀다. 사실 <블랙 미러>가 그리는 풍경은 그리 먼 미래의 상상 세계가 아니다. 미디어를 통제하여 비판적이고 성찰적이며 다양한 사고를 획일화하려는 모든 시도는 이미 전체주의적 폭력에 다름없다. 미디어 디스토피아에 대한 이 섬뜩한 우화가 바로 지금 이곳의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유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