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 〈플레시 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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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플레시 앤 본>
공포 혹은 에로 장르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제목과 달리 <플레시 앤 본>은 우아한 발레를 소재로 한 미국 스타즈 채널의 신작 드라마다. 그러나 첫 회가 시작되면 불과 5분여 만에 이런 즉물적인 제목을 택한 의도가 곧바로 피부에 와닿는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흔히 백조에 비유되곤 하는 발레리나들의 고상한 몸짓보다는 어둡고 차가운 수면 아래에서 물의 저항을 헤치며 나아가는 발의 고통에 더 집중하는 이야기다. 클래식 세계 이면의 잔혹한 속성이 주는 긴장감과 꽤 자주 등장하는 노골적인 섹스신과 노출신을 생각해보면 실제로 공포나 에로 장르적 요소를 지닌 것도 맞다.
주인공 클레어(세라 헤이)는 젊고 유능한 발레리나다. 어린 나이에 피츠버그 발레단에 입단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면서도 집안 사정 때문에 3년간 춤을 추지 못했던 그녀는 21살 되던 해 집을 뛰쳐나와 뉴욕 아메리칸 발레 컴퍼니 오디션에 응시한다. 예술감독 폴 그레이슨(벤 대니얼스)은 한눈에 클레어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곧바로 발레단의 새로운 주역으로 점찍는다. 유례가 없는 일에 단원들은 그녀를 질시하고 클레어는 환희와 두려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줄거리만 보면 미완의 천재가 무한경쟁과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완성형이 되어가는 전형적인 예술가 성장드라마 같다. 하지만 <플레시 앤 본>의 매력은 그런 밝은 이야기가 아니라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세밀하고 음울한 인간드라마에 있다. 마른 몸과 쉬지 않고 춤출 수 있는 체력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 다이어트와 혹독한 훈련을 병행해야 하는 무용수들의 스트레스, 수명이 짧은 발레리나의 세계에서 정상에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불안,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압박감 등 복잡한 고민들이 장황한 스토리가 아니라 인물들의 작은 표정 변화로 다 드러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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