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
자기계발서사의 종착지는 정리정돈 비법서로 귀결되는 모양새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서점가를 휩쓸었던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처세서들이, 성장의 희망이 사라지면서 서서히 힐링을 강조하는 치유서들로 대체되더니 최근에는 정리법 도서들이 다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지난 1년간 화제가 된 관련 도서들만 해도 <부자가 되는 정리의 힘>,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 <미니멀리스트>, <아무것도 없는 방에 살고 싶다>, <잡동사니 정리의 기술> 등 쟁쟁한 목록을 자랑한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자는 철학, 이른바 ‘미니멀 라이프’의 도래다.
‘미니멀 라이프’의 원조로는 흔히 미국의 19세기 사상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이야기하지만, 최근의 세계적 열풍에 불을 붙인 데에는 일본의 정리 전문가들도 큰 역할을 했다. 지난해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정리전문 컨설턴트 곤도 마리에가 대표적이다. 그녀의 명저 <인생이 빛나는 마법의 정리>는 국내에도 번역되어 인기를 끈 것은 물론, 영상으로 옮겨진 드라마까지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올해 1분기에 방영된 드라마 <우리 집엔 아무것도 없어>는 일본의 ‘정리력’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모범사례다. 개인 블로그에 올려 선풍적인 인기를 끈 자신만의 정리 비법을 만화 에세이로 재탄생시킨 작가 유루리 마이의 동명 원작을 드라마화했다. 곤도 마리에의 저서가 정리의 세계에 입문시키는 철학서에 가깝다면, 유루리 마이의 만화는 더 본격적인 정리법을 설파한다. 그것은 ‘버리기 마녀’로 지칭될 정도로 극단적인 버림의 미학을 통해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세계다. 과격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블로그에서 출발한 만화답게 정리 과정에서의 소통을 강조한 덕에 경쾌한 설득력을 띤다.
드라마는 원작의 만화적 느낌을 잘 살려 발랄하게 출발한다. 정리와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던 마이(가호)가 어떻게 해서 ‘버리기 마녀’로 거듭나게 되었는가가 유쾌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바로 2회에서는 이 ‘미니멀 라이프’의 도래에 3·11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사회적 비극이 자리하고 있음이 밝혀진다. 그토록 많은 소유물들은 재난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마이는 단 4개의 박스로 남은 짐을 보며 “정말로 필요한 건 이 정도”라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실제로 일본의 미니멀 라이프 유행이 3·11 이후로 한층 가속화되었다는 사실이 작가의 경험을 통해 확인된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