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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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중쇄를 찍자>
지난해 출판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져나가던 책들 가운데 <중쇄를 찍자>라는 작품이 있었다. 제목처럼 책을 만들고 한권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에게 안겨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인데, 좋은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그 공감이 특정 업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주간 만화잡지 편집부에서 일하게 된 신입사원이 차츰 세상에 적응해나가며 꿈을 키워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마음을 움직이는 성장담이다.
얼마 전 일본 <티비에스>(TBS)에서 방영을 시작한 <중쇄를 찍자>는 마쓰다 나오코의 이 동명만화를 영상화한 드라마다. 국내에서는 만화잡지 편집부라는 일본 특유의 배경이 좀 낯설 수도 있으나, 대신 주인공 구로사와 고코로(구로키 하루)에게서 낯익은 모습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전직 유도선수다운 특성을 회사 업무에 적용하는 모습이 <미생>의 장그래를 떠올리게 해서다. 장그래가 승부처마다 바둑의 철학을 따르며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듯, 고코로 역시 언제 어디서든 유도인의 정신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간다.
물론 결정적 차이점이 있다. <중쇄를 찍자>는 기본적으로 명랑성장만화의 세계다. 둘 다 냉혹한 생존경쟁의 장에 뛰어든 사회초년생이지만, 장그래가 사색적이고 진중한 데 반해 고코로는 한판승의 맛을 아는 유도선수 출신답게 시원시원한 열혈청년으로 그려진다. 드라마에서 그녀의 매력을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은 첫 회 도입부인 고토칸출판사 최종면접 신이다. 고코로의 독특한 이력을 시험하기 위해 기습공격하는 사장을 단숨에 엎어치기하는 모습은 그녀의 승부사적 기질과 함께 이 드라마 역시 그처럼 한판승의 재미를 주는 명쾌한 이야기가 될 것임을 예고한다. 실제로 매회 다양한 사건이 벌어져도 이야기는 늘 희망적으로 마무리된다.
그렇다고 마냥 긍정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작품도 아니다. 고코로가 ‘힘내’라는 응원에 정말 격려받는 것과 달리 누군가는 이 대책 없는 말에 상처받을 수도 있음을 이 작품은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모두가 고코로같이 패기 넘칠 수도 없을뿐더러 의욕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수도 없다. 드라마가 말하는 희망은 그저 소박하다. 고코로가 늘 되뇌는 유도정신처럼 “자신의 힘을 최대한 살려 올바른 곳에 사용하고, 타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감사해하며, 서로를 신뢰하고 함께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가 바로 희망이다.
김선영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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