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8.26 19:03
수정 : 2016.08.26 20:01
[한겨레]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반 헬싱>
이번주 국내 개봉한 <고스트버스터즈>는 1984년의 세계적인 흥행작을 32년 만에 리부트한 작품이다. 이야기를 다시 쓰는 과정에서 원작과 달리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할리우드의 ‘젠더 스와프’(성별 교환) 열풍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엑스맨> 시리즈의 인기 캐릭터 울버린도 여성으로 교체될 예정이고, <아이언맨> 원작에서도 차세대 아이언맨으로 활약할 여성 캐릭터가 공개되며 극장판 시리즈에서 만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러한 경향은 미국 드라마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드라마에서 흥미로운 점은 전형적인 남성 중심 영웅서사에서 ‘묻혀진’ 여성 영웅 계보를 발굴하는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슈퍼맨의 사촌 카라 조엘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대안적 여성 슈퍼영웅물의 가능성을 확인시킨 <슈퍼걸>을 비롯해, 서부 개척 시대의 전설적인 총잡이 와이엇 어프 증손녀 이야기 <위노나 어프>도 시즌2 제작이 확정되며 시리즈를 이어가게 됐다.
이러한 가운데 <위노나 어프>를 성공시킨 사이파이(Syfy) 채널이 전설적인 남성 영웅의 여성 후손 이야기를 다룬 또 하나의 오리지널 시리즈를 발표했다. 최근 파일럿을 방영한 <반 헬싱>은 뱀파이어 헌터 대명사인 에이브러햄 반 헬싱의 후손 버네사 헬싱(켈리 오버턴)의 활약을 그린 작품이다. 주인공의 이름 설정부터가 의도적이다. 남성영웅물로 유명한 제목에 일부러 ‘성 반전 표지’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태연하게 여성영웅 이야기를 펼치는 태도가 꽤 재미있다.
드라마가 그려내는 풍경은 에이브러햄 반 헬싱이 활약한 고딕 호러 세계와는 사뭇 다르다. 2016년 뱀파이어의 대대적인 ‘역습’으로 인류 문명이 종식된 이후 2019년 근미래에서 펼쳐지는 포스트아포칼립스의 서사다. 전체적인 종말의 풍경은 <워킹데드>의 세계에 가깝고 종말 이전에 의식을 잃은 버네사가 몇년 만에 눈을 떠 공포와 맞닥뜨리는 도입부도 <워킹데드> 주인공 릭의 상황과 유사하다. 감염되기 전의 모습을 간직한 채 남루해진 뱀파이어들도 좀비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의 성격은 엄연히 다르다. 살아남은 자들의 존재론적 불안과 갈등에 주목한 <워킹데드>와 달리 <반 헬싱>은 초인적인 주인공의 힘을 즐기는 영웅물이다. 파일럿에 대한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고 버네사가 러닝타임 절반 내내 누워 있었던 탓에 재미도 밋밋했으나 본격적인 행보가 펼쳐질 다음 이야기는 궁금하다. 도입부에서 순식간에 뱀파이어 셋을 제압한 버네사 헬싱의 맛보기 액션을 고려하면 추후의 모습이 기대가 된다. 최소한 더욱 다양한 장르의 여성영웅물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도 지켜볼 이유는 충분하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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