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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8 19:05 수정 : 2016.11.18 19:2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폴리티컬 애니멀>

“이 자리에 함께한 젊은 여성들과 소녀들에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졌다고 용기를 잃지 마십시오. 제가 여기까지 왔기에 언젠간 여러분 중 한 명이 이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폴리티컬 애니멀>의 도입부를 열어젖힌 주인공의 연설은 한 정치인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 영부인 출신’이라는 이력에 이르면 더 명확해진다. 주인공 일레인 배리쉬(시고니 위버)는 정확히 힐러리 클린턴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은 인물이며, 도입부는 힐러리가 2008년 민주당 예비 경선 패배 당시 여성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연설에서 따온 것이다.

연설에서도 엿보이듯 ‘여풍’은 그해 미국 대통령 선거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였다. 민주당에 힐러리가 있었다면, 공화당에서는 부통령 후보 세라 페일린의 반짝 돌풍이 있었다. 최후의 승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면서도 여전히 남성인 버락 오바마에게 돌아갔지만 이 ‘여풍’은 정치드라마 트렌드의 변화라는 성과도 남겼다. 2012년에 <에이치비오>(HBO)가 먼저 세라 페일린의 이야기를 담은 단막극 <게임 체인지>와 그녀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여성 부통령 소재의 시트콤 <비프>를 내놓으며 트렌드를 주도했고, 같은 해 <유에스에이 네트워크>(USA Network)가 힐러리를 모델로 만든 <폴리티컬 애니멀>로 이 물결에 동참했다.

더욱이 <폴리티컬 애니멀>은 올해 드디어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추대된 힐러리가 도널드 트럼프보다 많은 득표수를 얻고도 패배했기에 지금 볼 때 더 의미심장한 작품이다. 극 중 일레인도 경선 좌절 후 국무장관으로 헌신하며 다시 대권을 노린다. 흥미로운 것은 이혼으로 전직 대통령 남편의 그늘을 벗어나고, 정부에서도 대통령이 의지할 정도로 완벽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일레인이 또 다시 발목 잡히는 지점이 ‘엄마’로서의 정체성이라는 점이다. 일레인은 항상 ‘아이들보다 국가를 우선시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자녀들을 먼저 챙긴다. 이러한 모습은 한때 일레인을 롤모델 삼을 만큼 동경했던 급진 페미니스트이자 젊은 기자 수잔 버그(칼라 구기노)의 혐오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일레인을 동행 취재하게 된 수잔이 가까이에서 확인한 것은 결국 성차별이 여성의 모든 삶에 얼마나 다층적이고 심층적으로 침투해 있는가였다.

일레인이 재현한 힐러리의 ‘의미 있는 패배’는 그래서 더욱 가치를 발한다. 힐러리는 그 ‘유리천장’이 얼마나 공고한가를 알기에 패자의 고통보다 한 걸음의 진전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2008년에 이어 올해의 대선 패배 연설에서도 일관된 메시지는 “언젠가, 누군가가 유리천장을 깰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는 결코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길고 치열한 싸움을 통과한 자만이 할 수 있는 예언이다. 극 중 일레인의 가장 인상깊은 대사도 이 지점에서 교차한다. “인생은 대부분 지옥이고 상실과 실패로 점철되어 있지.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봐야 다 끌어 모아도 한줌 모래뿐이야. 하지만 계속하지 않으면 다음 멋진 순간으로 넘어갈 수 없어. 그래서 계속 하는 거야. 계속 전진하는 거지.”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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